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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영화 주연만 506편을 했다는 신성일. 사실 저는 그 신성일을 배우 신성일로 알기보단 영화 <비 오는 날 수채화>의 주연이었던 ‘강석현의 아버지’ 혹은 아침 방송프로에 출연해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야, 집 나간 남편은 참고 기다리면 다 돌아오게 돼 있어’라며 젊은 여성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엄앵란의 남편’으로 알고 있는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출간된 신성일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는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책이었습니다. 70살이 넘는 나이에도 젊은 시절의 미모를 가늠할 수 있는 곱상한 외모와 달리, 300쪽이 넘게 실린 그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생짜의 살아 있는 언어였습니다. 형식적 겸손은커녕 자화자찬이 넘쳐나고, 내숭은커녕 스스로 자신의 불륜을 실명으로 폭로하고, 영화계 고인에 대한 사교적 언사는커녕 뒷담화가 작렬하더군요.
읽는 이에 따라선 이 책을 뇌물 받고 감옥까지 갔다 온 전직 국회의원의 자기합리화라고 폄훼할 수도 있겠지만, 신성일이란 인물에 아무런 정보도 입장도 없었던 저에겐 그저 ‘파란만장 풍운아의 쾌도난담’이었습니다. 70년대 디제이와 손을 잡고 정치를 하려다 엄앵란이 청와대에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실패한 사연, 1억원이 넘는 돈을 사기당한 분풀이로 고급 외제차를 사서 경찰들에게 외제 담배를 돌리며 과속질주를 한 사연, 호텔에서 바람을 피우다 종업원들이 엄앵란에게 전화를 거는 바람에 들킨 사연 등…. 마치 신성일이 제 앞에 앉아서 침 튀기며 말을 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켜 아주 오랜만에 인터뷰를 읽는 재미를 만끽했습니다.
이번주 〈esc〉의 ‘김어준이 만난 여자’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입니다. 그는 2002년 이회창 대선 후보의 발탁으로 ‘얼짱 판사’라는 네티즌의 열광 속에 포털 메인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정치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런 나경원 의원에게 콤플렉스를 물으니 “외모”라고 답을 했습니다. 마치 탤런트 김태희가 “저도 외모 콤플렉스 있어요”라고 말하는 격이니, 네티즌들이 돌을 던지지 않을까 제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이외에도 나경원 의원의 어린 시절과 일탈을 집중적으로 물어본 이번 인터뷰를 만나보시죠.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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