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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싫다.(영어 알파벳 붙인 세대론은 더 싫다. 지(G)세대가 뜬단다. 그린·글로벌에서 지를 땄고,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지세대라고? 이 무슨 김연아가 세바퀴 점프 뛰고 코너링 돌다가 미끄러지는 소리냐.) 무 자르듯 세대를 자르면 80년대 초에 태어나 90년대 마지막해 대학에 들어간 나는 88만원 세대의 끝자락쯤에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앞뒤 맥락이야 충분히 이해하고 나 자신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듣기 싫은 이유는, 그 말에 유머가 없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는 절대 지금의 20대가 만들어낼 수 없는 말이다. 어둠으로 가득한 그런 단어를 만들어내기에, 지금의 젊은 세대(그래, 30대 초·중반까지 넣어준다)는 제법 유쾌하다. 지난 1월 청년실업률이 9.3%를 찍었단다. 실업률이 수목드라마 시청률도 아닌데 계속 오르니, <청년실업률>이라는 드라마가 있다면 시청률 두 자릿수는 확실히 보장한다. 상황은 좋지 않다. 죽도록 공부해 스펙 높여놓고 하는 일이라곤 온종일 인터넷 뒤적이는 게 전부인 잉여인간, 쩌리들이 넘쳐난다. 그렇게 사회에 지분 없고 존재감 없는 이들이 앉아 노닥거리고 킥킥대면서 만들어낸 게, 커버스토리에 쓴 쩌리짱이나 잉여킹 같은 말이다. 이런 말들에서 이전 세대는 자조를 읽어낸다. 스스로를 희화화시키는 자조 섞인 웃음을 안쓰러워하기도 한다. 뭐, 자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농담 따먹기 식의 말장난에서 별표 쳐야 하는 건 자조가 아니라 유머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사회·경제적으로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들에게 유머가 있고, 유머는 살아가는 데 큰 힘이며, 그게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신호가 될 거라는 것뿐이다.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무슨 일을 하든, 얼마나 절망적이든 혹은 희망적이든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스펙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거다. 젊은 세대가 늙은 세대가 되는 몇십년 후,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아진다면 그건 아마 그들의 유머러스함 때문이 아닐까. 안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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