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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김애란 작가의 단편 ‘성탄특선’에는 크리스마스 전야에 둘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헤매는 가난한 커플이 등장합니다. 이 두 사람은 마침내 둘만을 위한 지상의 방 한 칸, 그러니까 비어 있는 모텔 방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을까요? 그럴 리가요. ‘따따블’을 준다고 해도 방을 구할 수 없는 일년 중 딱 하루가 바로 크리스마스 아닙니까. ‘불타는’ 연애를 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한두번쯤 유사한 경험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헤어지기는 싫고, 마침(!) 버스는 끊겼고, 택시비는 아깝고, 가까운 곳에 ‘둘만의 공간’은 찾기 힘들고…. 이렇게 헤매던 겨울밤의 행각도 이제는 구세대의 추억으로만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밀하게 ‘둘만의 공간’은 아니지만 이제는 심야의 데이트족들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니까요. 이번주에 쓴 24시간 영업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도 그런 곳 중 하나죠. 소설 속에서 가난한 커플들을 더 쓸쓸하게 만들었던 크리스마스가 또 돌아왔습니다. 커플들에겐 ‘뜨거운 밤’보다 아름다운 데이트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김애란 작가가 소설에서 설파했듯이 크리스마스에는 돈을 얹어줘도 방 구하기 힘듭니다. 괜한 모험 강행하지 마시고 감자튀김 씹으면서,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소곤소곤 성탄 전야를 함께 보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단,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과도한 애정행각은 촌티 만발인 거 아시죠? 〈esc〉가 새해부터 지면 개편을 하면서 몇몇 칼럼의 문패가 바뀌게 됩니다. 지금까지 〈esc〉의 활력을 더해주신 필자분들, 금태섭, 노동효, 노중훈, 임익종, 장진택, 조진국, 장 필립 보드레씨께 감사드립니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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