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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며칠 전 인터넷 연예뉴스를 뒤지다가 흐뭇해졌습니다.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5가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읽었죠. 누군가 준표와 영애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린 시절 들었던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질문에 맞먹는 고뇌를 해야 할 만큼 <영애씨>를 사랑했으니까요.
물론 ‘영애씨’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흔히 티브이 드라마에 빠질 때 느끼는 흥분과는 다릅니다. 이건 차라리 의리라고 해야 더 정확할 거 같습니다. 5시즌, 2년 반을 매주 한번씩 만나다보니 이제는 말 그대로 친구 같고 가족 같습니다. 영애가 도련님 원준씨에게 집착해 스토커적 기질을 발휘했을 때는 십년 세월 함께 ‘삽질’을 해온 여자친구처럼 “으이구, 이 미친 ×, 아주 매를 버는구나, 벌어”를 연발했고, 혁규가 부모를 속이고 집 팔아서 영채를 비전도 없는 유학 보냈을 때는 영애네 집 옆집 아줌마처럼 쯧쯧, 혀를 차면서 “저 철딱서니 없는 인생들을 어찌할꼬”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한때 ‘시즌’ 바람이 분 적 있습니다. 속편 영화에도 ‘시즌2’, 노래와 광고에도 시즌 어쩌구, 웬만하면 시즌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더랬죠. 유행어처럼 쓰이다 금방 시들해진 ‘시즌’제의 진짜 매력을 ‘영애씨’ 보면서 절감합니다. 성공의 꿈과 연애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서른 살 영애가 완연한 삼십대의 계약직 싱글녀로 변모한 요즘, 소주잔을 기울이며 같이 신세 한탄을 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라는 말에 충격받고 건강염려증에 걸린 영애 아버지를 보면 우리 아버지를 보는 것처럼 ‘웬 주책이래’ 핀잔하면서도 가슴이 짠합니다. ‘영애씨’가 방영된 2년 반은 등장인물들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니까요.
‘절친’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던 <프렌즈>처럼 ‘영애씨’도 10시즌까지, 아니 그보다 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덩어리” 시집 보내서 아이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싶은 게 저만의 바람은 아니겠죠?
김은형 〈esc〉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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