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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있는 느낌

등록 2008-05-22 15:08

알렉세이 바실리예프가 찍은 흐릿한 영상. www.vassiliev-photo.net
알렉세이 바실리예프가 찍은 흐릿한 영상. www.vassiliev-photo.net
[매거진 Esc] 인터넷 사진여행
우리는 가끔 낯선 공간에 있는 듯하거나 몸에 이상이 생겨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착각이든 욕망이든 우리는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경험들이 있다.

러시아 출신 사진가 알렉세이 바실리예프의 희미한 사진들은 이런 느낌을 이미지로 잡아낸다. 사진들은 환상 속에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고요하면서 강렬하다. 이미지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의 이마고(imago)는 유령이라는 뜻이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갇혀 있는 육체나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이 느껴진다. 사진에 찍힌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카메라의 내밀한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악마 같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하다. 사진 속 사람들은 탈출을 위해 투쟁하며 고뇌하고 소리 지른다.

바실리예프는 옛소련 체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현재까지 파리에서 머물며 작업 중이다.

“매일, 나는 같은 장소에 가고 낯선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것이 어디로 이끄는지 몰랐다. 그러나 저항할 수 없었다. 나는 거기 있었고 그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이 사진들은 역설적이다. 사진 속 인물들이 흐려지고 희미할수록 그들의 존재감은 더 강하게 와 닿는다. 사진은 항상 초점이 맞아야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것은 선택일 뿐이다.

이 사진들이 강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인간의 눈과 카메라의 시선이 만들어낸 감정 때문이다. 불명확한 시선으로 불가사의한 아우라를 일으키는 이 사진들은 렌즈와 눈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박승화/<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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