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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쪼다’
명사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동사입니다. 국어사전 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을 뾰족한 끝으로 쳐서 찍다.” 닭이 모이를 쪼거나, 딱따구리가 나무를 쫄 때 씁니다. 사람에겐 부리가 없지만, “제발 쪼지 말라”는 이야기를 가끔 주고받습니다. 몇 가지 상황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①배우자가 바가지를 긁다. ②상사가 일 재촉을 하다 ③부모가 아이를 닦달하다. 이 중에 가장 불쌍한 쪽은 ③번의 아이들 같습니다.
오늘도 부모들은 자녀들을 쫍니다. 공부해라, 숙제해라 ….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 그 수위는 급격히 높아집니다. 학교 공부 따라잡느라 사설 학원에라도 다닌다면, 소년 소녀기의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봐야 합니다. 감당해야 할 숙제들이 장난이 아닙니다. 쪼는 부모들도 불쌍합니다. 두고만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못 푸는 문제, 대신 풀어줘야 합니다. 주말에 쉬려 해도 아이들 숙제 때문에 쉴 수 없다는 하소연이 나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아이들을 쫍니다. 당선되자마자 영어 몰입교육 하라고 쪼았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일제고사 실시로 또 쪼았습니다. 대통령이 쪼니 교육부 장관도 쪼고, 교장 선생님도 쪼고, 담임 선생님도 쫍니다. 결국 부모도 쫄 테고, 아이들조차 스스로를 쫄 겁니다. 모두 딱따구리가 될 것만 같습니다.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씨는 “오늘 한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좋은 책이 아니라 놀게 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전사회적 합의에 의해 어린이 탄압이 이뤄진다”고 개탄합니다. ‘아이들 놀게 돕는 본부’를 꾸리자는 제안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아이들 공부 덜 시키기 운동’이나 ‘아이들 쪼지 않기 운동’이 벌어져야 하지는 않을까요? 날씨는 화창한데, 아이들은 더 우울해지는 느낌입니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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