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한국사진의 선구자들〉 박평종 지음, 눈빛 펴냄
[매거진 Esc] 사진 읽어주는 여자
펄럭이는 소리가 들린다. 똑딱똑딱 시계 소리도 들린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왼쪽에서 들이치는 빛 때문에 반대편에 그림자가 흉하게 드리워졌다. 그 검은 흔적조차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처음 이 작품을 보고 한국의 사진가가 찍었다는 소리에 놀랐다. 철학적인 냄새가 20세기 현대 사진의 한 자락을 차지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 사진은 현일영이 1967년에 찍은 <시간은 흐른다>이다.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카메라가 붙잡았다. 요즘 대상화하기 힘든 시간을 카메라에 담으면 인기다. 장시간 노출로 인기를 얻고 있는 사진가 김아타가 있지 않은가! 현일영이 잡은 시간은 요란한 인기는 없고 조용한 슬픔이 배어 있다. 사진 활동을 왕성하게 한 삼십대를 일제강점기에서 보냈고, 6.25전쟁을 거쳤으며, 많은 동료 사진가들이 풍경과 사람에 집착하는 동안 다른 사진 세계를 추구한 그의 이력 때문이리라.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피사체는 주변에서 찾기 쉬운 것들이다. 달력·시계·버선·치마 등 수동적인 피사체 안에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느껴진다. 그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고독한 자신의 영혼을 사진에 담았다.
그는 1903년에 태어나 1975년에 숨졌다. 한국의 1세대 사진가이고 ‘현일영 사장’이란 사진관을 운영했으며 경향신문 사진기자로도 활동했다. 다른 1세대 사진가처럼 그 역시 작품의 보관 상태가 좋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출처 <한국사진의 선구자들> 박평종 지음, 눈빛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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