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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작가여, 빈틈을 보여주오

등록 2008-01-16 21:39수정 2008-01-21 11:32

경북 봉화군 충제 권벌 종가 불천위. 종가집에 조상을 모시기 위해 후손이 왔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남들보다 몇배의 준비와 작업으로 문화다큐멘터리의 미학을 선도해온 서헌강
정확하게 말하면 서헌강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보다는 문화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아니, 다큐멘터리보다는 풍경화에 가깝고 풍경화보다는 정물화에 더 가깝다는 게 그의 사진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바로 가기]

“빈틈이 없다고들 하지요. 트리밍을 해야 하는데, 칠 곳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크게 찍어오라고 해요.(웃음)”

운주사.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샘이깊은물> 사진부장 강운구의 눈에 띄다

매체 편집자들은 서헌강을 싫어한다. 지면에 맞게 사진을 적당히 자르고 돌출시켜야 하는데, 이런 편집의 묘를 부릴 수 없게 사진을 찍어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의 사진에서 피사체들은 모두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구도는 꽉 차 있다. 한마디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서헌강의 정체성을 추정하게 해주는 것은 2001년 11월 휴간한 잡지 <샘이깊은물>이다. 한국적 토속성과 민중성을 지향하다 1980년 군부독재에 의해 강제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를 이어받은 <샘이깊은물>이 그의 첫 직장이자 그가 “팩스 전송에서부터 취재, 사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까지 배운 곳”이다. 당시 사진부장이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강운구 선생이 중앙대 사진과에서 강의하다 눈에 띈 그를 졸업도 하기 전에 데려왔다.

그래서 서헌강의 작품 세계는 한국적 풍경과 정물, 인물이다. 안개가 서린 절집, 종갓집의 제사, 박물관의 보물이 그의 프레임 안에 담긴다. 그는 1996년 <샘이깊은물>을 나와 프리랜서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화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종가집.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간문화재(나침반) 김종대.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간문화재(명주실 짜기) 조옥이.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도제식 훈련을 받은 장인처럼 작업에서 철저하다. 거창한 메시지를 길어내는 작가인 연 하지 않고 스스로를 노동자로 소개하는 그로선 “사진 의뢰를 하는 사람에게 최상의 결과물을 보내는 게 의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는 야외사진 작업을 할 때 미리 출발·도착시간과 동선을 분 단위로 결정하고 기상청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이젠 그 자신이 위성사진을 보고 매시간의 일기를 예측하는 수준이 됐다. 또한 거추장스러운 각종 조명과 수대의 카메라, 렌즈를 자신의 차량에 싣고 다닌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쉼 없이 찍고 끝없이 기다린다. 결국 남보다 몇 배 쏟은 준비와 끈기로 ‘완벽한 사진’이 탄생하고, 한 달에 쉬는 날이 하루 이틀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작업 의뢰가 쏟아진다.

아내가 무심코 던진 “이제 깰 때가 됐잖아”

서헌강 사진가
서헌강 사진가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찍어 온 사진을 보던 아내가 무심결에 ‘이제 깰 때가 됐잖아’라고 하더군요. 화들짝 놀란 나는 ‘이걸 어떻게 깨냐?’면서 석 달을 고민했어요.”

이미 서헌강은 한국에서 누가 뭐래도 잘 찍는 사진가 중 한 사람이 됐다. 그는 요즈음 ‘버리는’ 연습을 한다. “주변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웃는 서헌강의 노동하는 낙천성은 언젠가 아내의 물음에 대답할 것이다. 그날은 아마 한국의 문화다큐멘터리의 미학이 한 단계 진보하는 날일지 모른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서헌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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