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남들보다 몇배의 준비와 작업으로 문화다큐멘터리의 미학을 선도해온 서헌강
남들보다 몇배의 준비와 작업으로 문화다큐멘터리의 미학을 선도해온 서헌강
정확하게 말하면 서헌강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보다는 문화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아니, 다큐멘터리보다는 풍경화에 가깝고 풍경화보다는 정물화에 더 가깝다는 게 그의 사진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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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이 없다고들 하지요. 트리밍을 해야 하는데, 칠 곳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크게 찍어오라고 해요.(웃음)”
<샘이깊은물> 사진부장 강운구의 눈에 띄다
매체 편집자들은 서헌강을 싫어한다. 지면에 맞게 사진을 적당히 자르고 돌출시켜야 하는데, 이런 편집의 묘를 부릴 수 없게 사진을 찍어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의 사진에서 피사체들은 모두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구도는 꽉 차 있다. 한마디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서헌강의 정체성을 추정하게 해주는 것은 2001년 11월 휴간한 잡지 <샘이깊은물>이다. 한국적 토속성과 민중성을 지향하다 1980년 군부독재에 의해 강제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를 이어받은 <샘이깊은물>이 그의 첫 직장이자 그가 “팩스 전송에서부터 취재, 사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까지 배운 곳”이다. 당시 사진부장이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강운구 선생이 중앙대 사진과에서 강의하다 눈에 띈 그를 졸업도 하기 전에 데려왔다.
그래서 서헌강의 작품 세계는 한국적 풍경과 정물, 인물이다. 안개가 서린 절집, 종갓집의 제사, 박물관의 보물이 그의 프레임 안에 담긴다. 그는 1996년 <샘이깊은물>을 나와 프리랜서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화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그는 도제식 훈련을 받은 장인처럼 작업에서 철저하다. 거창한 메시지를 길어내는 작가인 연 하지 않고 스스로를 노동자로 소개하는 그로선 “사진 의뢰를 하는 사람에게 최상의 결과물을 보내는 게 의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는 야외사진 작업을 할 때 미리 출발·도착시간과 동선을 분 단위로 결정하고 기상청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이젠 그 자신이 위성사진을 보고 매시간의 일기를 예측하는 수준이 됐다. 또한 거추장스러운 각종 조명과 수대의 카메라, 렌즈를 자신의 차량에 싣고 다닌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쉼 없이 찍고 끝없이 기다린다. 결국 남보다 몇 배 쏟은 준비와 끈기로 ‘완벽한 사진’이 탄생하고, 한 달에 쉬는 날이 하루 이틀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작업 의뢰가 쏟아진다.
아내가 무심코 던진 “이제 깰 때가 됐잖아”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찍어 온 사진을 보던 아내가 무심결에 ‘이제 깰 때가 됐잖아’라고 하더군요. 화들짝 놀란 나는 ‘이걸 어떻게 깨냐?’면서 석 달을 고민했어요.”
이미 서헌강은 한국에서 누가 뭐래도 잘 찍는 사진가 중 한 사람이 됐다. 그는 요즈음 ‘버리는’ 연습을 한다. “주변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웃는 서헌강의 노동하는 낙천성은 언젠가 아내의 물음에 대답할 것이다. 그날은 아마 한국의 문화다큐멘터리의 미학이 한 단계 진보하는 날일지 모른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서헌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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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헌강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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