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등산 애호가들이 산행하기 최고로 꼽는 계절이다. 변덕심한 날씨와 혹독한 추위 속에 산행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현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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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는 다양한 환경에서 등산 경험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등산 애호가들은 특히 겨울산행을 최고로 꼽는다. 2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은 없지만 한국의 겨울 산은 매우 혹독하기 때문에 준비 없이는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매혹적인 겨울산행을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알아보자.
첫 번째는 헤드램프이다. 사실 헤드램프는 겨울철뿐 아니라 사시사철 항상 등산 배낭에 넣고 다녀야 한다. 해가 짧은 겨울철, 산에서는 오후 4시만 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특히 눈이 왔다면 등산로 지형이 변해서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많은 경우 겨울산행은 예상 소요시간보다 더 걸린다. 길이 미끄럽고, 눈길에 발걸음이 더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낮은 기온으로 열량 소모가 많아서 평소보다 빠르게 체력이 소진된다. 오후 5시 이전에 충분히 하산을 마칠 계획으로 헤드램프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겨울산행을 나서지 말아야 한다. 겨울산행 안전사고의 많은 경우가 헤드램프가 없어서 발생한다. 아울러 출발 전에는 헤드램프의 건전지가 충분한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여름 장마 때 일회용 비옷처럼 겨울철 등산로 입구 노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비는 아이젠이다. 신발 밑창에 부착하여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장비인데 아침에 서둘러 나오다 보면 빼먹고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점에서 급히 구입한 장비는 대부분 품질이 떨어져서 한두 번 사용하고는 폐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젠은 탈부착이 쉬우면서 등산화에서 쉽게 이탈하지 않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
겨울 눈길에서 직접 눈에 노출되기 때문에 등산화와 양말은 겨울용을 준비한다. 등산화는 발목 복숭아 뼈 위로 올라오는 게 좋고, 방수 기능이 있어야 한다. 운행 중에는 발이 젖어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잠시 쉬거나, 오후가 되어 바람이 강해지면 젖은 발은 자칫 동상에 걸릴 수 있다. 양말은 빨리 마르는 속건성 제품을 선택한다. 젖어도 어느 정도 보온성을 유지하는 울 소재의 양말이 겨울산행에는 최적이다.
만약 눈이 쌓여 있거나, 눈이 올 가능성이 있다면 발목을 감싸는 스패츠(게이트)를 준비한다. 스패츠는 등산화 사이로 눈이 들어가는 것을 차단해주는데 눈이 쌓인 곳에서는 방수 등산화라고 해도 발목 사이로 눈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전문 산악인들을 위해 방수 투습 소재를 사용한 비싼 제품도 있으나 스패츠는 굳이 값비싼 제품일 필요는 없다.
장갑은 두 벌을 준비하는 게 좋다. 얇고 조작성이 좋은 운행용 장갑과 겉은 방수 소재로 만들고 중간에 보온 충전재가 들어있는 장갑을 준비한다. 등산 중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다니는 것은 위험하므로 늘 추위에 직접 노출된다. 한번 손이 시리면 다시 체온을 되찾기 쉽지 않고, 추위에 곱은 손으로는 휴대폰을 조작하거나, 트레킹 폴을 쥐거나, 풀어진 등산화 끈을 다시 묶는 일도 쉽지 않다.
평소 트레킹 폴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겨울 등산로는 미끄럽기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므로 가져가는 게 좋다. 만약 많은 눈이 왔다면 트레킹 폴이 눈 속에 쉽게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넓은 바스켓을 부착하는 게 좋다. 그 외에도 등산 대상지의 난이도와 당일 날씨 등을 사전에 파악하여 얼굴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목출모(바라클라바),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 텀블러도 큰 도움이 된다. 핫팩 하나쯤 챙겨 넣는다면 곱은 손을 녹이거나, 휴대폰의 배터리를 되살리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겨울산행에서는 휴대전화의 전원 관리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휴대전화 통신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많은 사고 사례들이 있으며, 치명적인 조난 사고를 당했지만 통신이 가능해서 무사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아주 깊은 계곡이 아니라면 많은 경우 휴대전화 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도 앱을 통해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긴급한 상황에서 구조를 요청할 수 있다. 기온이 낮으면 배터리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휴대폰은 항상 보온 재킷의 속주머니에 수납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배터리 잔량을 늘 5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게 좋다.
이전 글에서 겨울산에서의 체감온도 계산법을 소개한 적 있지만, 중요한 정보이므로 다시 한 번 공유한다. 풍속이 초속 1m 빨라질 때마다 체감온도는 대략 1도~1.5도 정도 낮아진다. 온도계는 영하 10도로 측정되지만 풍속이 초속 10m라면 영하 20도 이하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고도나 100m씩 올라갈수록 기온은 다시 평균 0.6도씩 내려간다. 만약 평지에서 영하 10도인 날 해발 1000m에서는 영하 16도, 여기에 바람이 초속 5m 정도만 불어도 영하 20도 이하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바람이 초속 5m라면 선풍기의 중간 풍속 수준이며, 겨울산 능선에서는 이보다 강한 바람을 맞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겨울산은 출발 기점에서의 날씨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현상 (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 ‘인사이드 아웃도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