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산행을 할 땐 배낭 무게를 줄여야 한다. 이현상 제공
봄이다. 이른 꽃들은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고, 곧 싱그러운 연두색 나뭇잎들이 돋아날 것이다. 등산하기 딱 좋은 날들이다. 이 좋은 봄날에 배낭마저 가볍다면 등산은 더 즐거워질 것이다. 평소보다 등산이 힘들었다면 등에 짊어진 배낭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자. 배낭 속 짐을 1㎏만 덜어내도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을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약간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자전거는 1㎏을 경량화하는 데 100만원이 든다고 하는데 등산 배낭을 가볍게 하는 일은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출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배낭을 가볍게 할 수 있을까. 이번 연재는 가벼운 배낭에 관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같은 짐과 무게에도 배낭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따라 체감 무게가 다를 수 있으므로 올바른 배낭 꾸리기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산행 중 자주 꺼내야 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분류한다. 이현상 제공
오늘의 배낭이 가벼워지려면
배낭은 가벼울수록 좋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누구나 괴로운 기억보다 즐거운 추억을 원한다. 등산의 즐거움은 가벼운 배낭에서 출발한다. 가벼운 배낭 무게는 자연과의 교감을 더 깊게 해준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숨이 턱까지 찬다면 주변의 경관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장비가 많아지고 무거워지면 등산을 준비하는 시간과 다녀와서 정리하는 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등산이나 캠핑이나 아웃도어 활동의 본질은 자연과 교감하며 삶의 활력을 주기 위한 것인데 배낭 무게에 짓눌리고 너무 많은 장비에 치인다면 주객이 뒤집힌 격이다. 게다가 장비는 점점 발전하고 있고,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의 배낭이 더 가벼워질 수 있다.
가벼운 배낭을 원한다면, 그래서 더 즐거운 등산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필요(needs)와 욕구(wants)를 구분하는 게 좋다. 등산용 의자를 예로 들어보자. 안전한 산행을 위해 필요한(needs) 장비인지, 편안히 앉기 위해 원하는(wants) 장비인지를 구분해보면 배낭 속에 담을지, 제외할 것인지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편하게 쉬는 시간이 많은 산행이거나, 한곳에서 장시간 머물러야 하는, 예를 들어 일출이나 일몰 사진 촬영을 위한 산행이라면 의자는 필요(needs)한 장비가 될 것이다. 만약 걷기 중심의 산행이라면 의자는 단지 잠시 편하게 앉기 위해 원하는(wants) 장비이며, 그 잠시를 위해 긴 시간 동안 등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평소 자신이 배낭에 담는 물건들의 쓰임새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배낭에 늘 넣고 다니지만 제대로 써본 기억이 없는 장비가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
일렬로 세워놓은 등산객들의 배낭. 이현상 제공
같은 무게, 더 가벼운 배낭
배낭을 가볍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배낭에 넣을 장비를 분류해야 한다. 특히 1박 이상의 장거리 종주 산행이라면 운행 중 자주 꺼내서 사용하는 장비와 야영지나 대피소에 도착해서 사용하는 장비를 나눈다. 자주 꺼내는 물건으로는 바람막이 재킷이나 물통 등이 있을 것이고, 운행 중 열량 섭취를 위한 행동식도 운행 중 손이 자주 갈 것이다. 반면 매트리스나 침낭, 취사 장비 등은 대피소에 도착할 때까지 꺼낼 일이 없는 장비들이다. 자주 꺼내는 장비나 행동식은 배낭의 옆주머니, 헤드 포켓 등에 수납하고 중간에 꺼낼 일이 없는 장비들은 배낭 깊은 곳에 수납한다.
산행 중 자주 꺼내야 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한 장비를 수납할 때는 가벼운 것은 배낭 아래쪽부터 바깥쪽으로, 무거운 것은 배낭 위쪽과 등 쪽으로 넣는다. 이렇게 해야 배낭이 자기 몸에 밀착되며 반복되는 움직임에도 흔들림이 적다.
위와 같은 기본 원리에 따라 배낭을 꾸려보자. 첫째, 배낭의 가장 하단에는 부피 대비 가장 가벼운 장비인 침낭을 수납한다. 겨울철이나 이른 봄에 가져가는 우모복 등도 배낭 아랫부분에 넣는다. 배낭의 가장 하단에 부피 대비 가벼운 침낭을 수납하는 이유는 무게중심이 하단으로 쏠려 배낭이 밑으로 처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다 산행 도중에 꺼내서 사용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배낭의 중간 등 쪽에 무거운 장비나 음식을 수납한다. 신체 움직임의 무게중심은 사람의 몸, 특히 척추 쪽인데 무게중심 쪽에 무거운 것을 수납해야 흔들림을 최대한 줄이고 피로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배낭 중간의 바깥쪽에는 부피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텐트나 매트리스, 추가 의류 등을 수납한다. 넷째, 배낭 상단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장비와 의류를 수납한다. 예를 들어 코펠이나 스토브, 연료 등을 넣는다. 다섯째, 배낭의 가장 상단에는 운행 중 자주 꺼내서 사용하는 장비들을 수납한다. 예를 들어 악천후에 즉시 꺼내서 입을 수 있는 하드 셸 재킷이나 바람막이 재킷, 행동식 등이다. 끝으로 여분의 가벼운 옷이나 양말 등 수납 형상이 자유로운 물건들은 배낭 중간중간 비어 있는 곳을 채운다. 이렇게 하면 배낭의 형태를 유지하기 쉽다. 이처럼 배낭을 잘 꾸린다면 같은 무게라고 해도 산행 피로도가 크게 줄어든다.
버려진 생수통 줍는 ‘착한 등산’
필요와 욕구의 구분법은 식량 준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배낭 무게에서 음식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인데 한국의 산행 문화는 여전히 산에 가서 잘 먹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이 부족하여 곤경에 빠진 경험보다 음식이 남아서 처치하기 곤란했던 경험이 더 많다. 많은 음식은 조리하는 데 더 연료와 물이 필요하므로 배낭이 다시 무거워지고,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면 다시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산행에서는 조리가 간편하고 열량이 높은 먹거리를 준비한다. 특히 최근에는 맛도 훌륭한 간편식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산해진미 대신 에너지 섭취 중심으로 간편식을 준비하고, 맛있는 음식은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근처 식당에서 즐긴다면 조금이나마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음식물 최적화는 배낭 무게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배낭을 가볍게 하는 산행 스타일을 경량 하이킹이라고 부르는데 국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수년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굳이 저울까지 달아가면서 무게를 줄일 필요는 없다. 오늘보다 내일 좀 더 가볍게 배낭을 꾸릴 수 있다면 그게 나만의 경량화 전략이고 스타일이 될 것이다. 하산할 때 가벼운 배낭에 버려진 생수통을 수거해 내려온다면 ‘착한 등산’도 덤으로 실천할 수 있다.
이현상 (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 〈인사이드 아웃도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