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을 맞아 향을 피우는 중국계 싱가포르인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헝그리 고스트 페스티벌’(Hungry Ghost Festival). 직역하자면 ‘배고픈 귀신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이날은 매년 음력 7월15일로, 중화권에서는 중원절로 널리 알려진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중날이라 불리기도 한다. 매년 이즈음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화교 거주구역을 여행해본 이들이라면 거리 곳곳에 배고픈 귀신들을 위해 곡식, 과일 등 각종 음식을 두고 향을 피우거나 지전을 태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 잠시 살았던 싱가포르에도 아파트 단지 곳곳에 지전을 태우는 용도의 드럼통이 상시 배치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동남아시아를 장기간 여행하거나 1년 이상 거주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독특하고도 이질적인 신과 종교, 그와 연결된 명절과 풍습을 접하게 되는데, 동남아시아가 가진 중요한 매력 가운데 하나라고 꼽는 이들이 많다. 이런 명절들을 알고, 그 시기에 맞춰 여행을 계획한다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 페락주에 있는 마조신 석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동남아시아는 종교의 천국이다.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힌두교, 유교, 도교, 시크교, 유대교,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애니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토착 종교 등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이는 대강 구분한 것일 뿐, 더욱 깊이 파고들면 불교의 경우 소승불교라 불리는 상좌부불교와 중국에서 건너온 대승불교로 나뉘고 기독교는 가톨릭, 프로테스탄티즘, 복음주의 등이 있다. 인도에서 건너온 힌두교 역시 종류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 가운데 인도 남부 타밀 지역에서 건너온 힌두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부족 수만큼이나 다양한 토착 종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무슬림 가운데에도 지금은 정통 수니파가 대부분이지만, 근대 이전에만 해도 신비주의를 따르는 수피즘이 유행이었고 그 유산이 소수나마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보면 동남아시아는 세계 단위 종교의 용광로이자 신들이 모이는 대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종교의 다양성은 천 수백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문명적 교류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인도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소승불교가 대륙부 동남아시아에 자리 잡았고, 서아시아 무슬림 상인들의 활동으로 인해 해양부 동남아시아에 이슬람교가 자리 잡게 된다. 중국의 영향으로 유교와 도교, 대승불교가 베트남과 화교 거주구역을 중심으로 정착되었다. 16~17세기 유럽인들의 진출을 계기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전파되는데 특히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의 영향으로 인구의 대략 80%가 가톨릭을 믿는다. 또한 유럽 식민의 영향으로 인도인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힌두교와 시크교 등이 들어왔다. 근대 시기 유럽의 진출과 함께 등장한 유대인들도 있다. 다만 그 결과 동남아시아 전체로 보면 다양한 종교가 모여 있지만, 개별 국가들은 대부분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주류사회를 형성하였다. 소승불교의 경우 타이(94%), 미얀마(87%), 라오스(64%), 캄보디아(97%)에서 국교에 가까운 주요 종교로 자리 잡았고, 인도네시아(87%), 말레이시아(61%), 브루나이(80%)에서는 이슬람교가 주류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필리핀(79%)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동티모르(97%)에서는 대부분의 주민이 가톨릭을 오랫동안 믿어왔다. 특정 종교가 주류로 자리 잡지 않은 국가는 싱가포르와 베트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트남의 경우 사회주의의 영향인지 무교가 86%인 반면, 싱가포르는 20%의 무교를 제외하면 다양한 종교가 나름 균형을 잡고 있다.
1819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싱가포르는 자유무역항으로 근대 아시아에서 가장 바쁜 항구도시였다. 1920년대를 기준으로 당시 싱가포르항은 전세계 360여곳에서 모여든 선박들로 붐비는, 세계 6위의 항구도시였다. 이는 곧 싱가포르로 전세계, 특히 아시아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다양한 이주민들을 따라 들어온 신들 덕분에 종교 역시 다양해졌다. 당시 싱가포르는 최첨단의 근대적 기술 문명이 적용된 도시이자 자유무역과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이면서도 전세계 각지의 신들이 모여 공존하는 종교의 도시였다. 그런 면에서 싱가포르는 근대 이후 동남아시아 종교의 다양성을 함축하고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명절이다. 당시 식민정부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공휴일 역시 인구구성에 맞게 안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싱가포르의 대표적 도교 사원인 천복궁. 위키미디어 코먼스
예를 들어 1929년 싱가포르, 페낭, 믈라카로 구성된 영국령 해협식민지의 공휴일 목록 가운데 종교 관련 공휴일의 종류는 다양하다. 1월25일은 인도 타밀인들의 명절인 타이푸삼, 2월11~12일은 춘절(한국의 음력 설), 3월13일은 이슬람 최대의 축제로 라마단의 끝을 기념하는 하리 라야 푸아사, 3월29일과 4월1일은 부활절 관련 굿 프라이데이와 이스터 먼데이, 5월20일은 이슬람 기념일인 하리 라야 하지, 10월31일은 힌두교 최대의 축제인 디파발리, 12월25일은 크리스마스였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공화국 싱가포르 역시 이 명절을 거의 그대로 지킨다는 것인데, 추가된 명절은 불교도들을 위한 석가탄신일 정도다. 현지에서는 ‘베삭 데이’라고 불린다. 힌두교 명절인 디파발리의 경우 남부 인도인들은 디파발리, 북부 인도인들은 디왈리라고 지칭하지만,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하는 인도인들은 남부 인도인들이 많아 주로 디파발리라 지칭한다. 그 외에 시크교도, 유대인 등이 있었지만, 워낙 소수라 따로 그들의 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하지는 않은 듯하다.
종교의 수만큼이나 신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힌두교와 함께 다신교의 대표주자인 도교의 경우 주로 화교들이 믿었는데, 중국에서는 주로 상제, 관운장 등이 주요 신인 반면, 동남아시아의 화교 사회에서 중요한 신은 마조(媽祖)다.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마조 신앙은 중국 동남부 지역과 동남아시아 전역, 대만, 일본 등에서 바다와 화교 이주를 매개로 광범위하게 퍼진 종교다. 중국 북송 시기 복건(푸젠) 지역의 임씨 집안의 딸로 실존 인물인 듯한데, 사후에 복건인들을 중심으로 해신, 천비(天妃), 천후(天后) 등으로도 불렸다. 마조신은 바다의 여신인 까닭에 근대 이전, 중국 명나라 시기부터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오가며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던 복건인들에 의해 신봉되어왔다. 1820년대 싱가포르에 처음 발을 디딘 복건인들이 가장 먼저 한 일도 천복궁(天福宮)이라는, 마조를 주신으로 모시는 도교 사원을 화려하게 짓는 것이었다.
신봉하고 따르는 이들에게 신과 종교는 절대 선이면서 초월적인 존재이자 세계와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는 렌즈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신과 종교가 모여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절대적 믿음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근대 서구에 의한 식민 상태에서 동남아시아로 모여든 신들의 경우 ‘제국’이라는 우산 아래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가 그 가장 적합한 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제국이 해체되고, 각 지역의 개별 공동체들이 국민국가로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제국의 우산 아래 억눌려 있던 갈등들이 탈식민이라는 이름 아래 본격화하였다. 냉전과 탈식민 과정에서 발생한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격변들 가운데 상당수는 종교가 그 이유인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특정 종교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이 국민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탈식민을 명분으로 소수종교를 압박, 관리, 배척하는 태도를 때로는 은연중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보이면서 정치적 갈등으로 확산하는 식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교(타이·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이슬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브루나이), 가톨릭(필리핀·동티모르) 등은 식민시기 공존했던 소수종교를 탄압하면서 종교를 매개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전략을 취했고, 상호 불신을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매우 잘 먹혀들어갔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갈등이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는 티모르섬 동부의 주민들이 2002년 동티모르로 정식 독립하기 전까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로부터 수십년 동안 학살과 탄압을 당한 일은 유명하다. 독립한 동티모르를 제외하고도 인도네시아에는 7%의 개신교 신자와 3%의 가톨릭 신자가 남아 있는데, 이는 대부분 네덜란드 식민과 포르투갈 진출의 영향이다. 점령 초기부터 네덜란드에서는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의 작은 섬들을 중심으로 포교를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기독교 인구가 점차 늘어났다. 기독교 포교는 다름 아닌 교육과 보건, 문화의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서구화된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개종한 현지 주민들은 식민정부에 의해 군 병력 및 식민지 행정 관료가 되어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의 현지인들을 관리하였다.
동부 군도의 군 병력과 용병들은 자바인이나 수마트라섬의 아체인들을 총칼로 진압할 때에도 활용되었는데, 특히 말루쿠제도(Maluku Islands)의 주민들이 암본인(Ambonese)이라 불리며 악명을 떨쳤다. 이들은 소수의 인종으로 다수의 자바인들을 견제하고 통치하기 위해 수세대 동안 고용된 집단이었고, 1916년에는 근대적 신식무기로 무장한 병력이 9천명에 이를 정도로 강성했다. 대부분 왕립 네덜란드령 인도군 소속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직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이들은 그대로 식민지의 앞잡이로 여겨져 배척당하는데, 1951년에는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말루쿠인 군인들과 그 가족 1만2500명이 종교와 문화적으로 더 가까운 네덜란드로 떠나기도 했다.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 중인 약 4만명의 말루쿠인 공동체 가운데 대부분은 이들의 후예다.
그 외에도 동남아시아에는 이런 예들이 무궁무진하다. 필리핀 남부의 대섬인 민다나오섬에서 지금까지도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무슬림 무장세력, 불교 국가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슬림 로힝야 탄압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소수민족 카렌족과의 갈등, 타이와 말레이시아 국경 지역에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말레이계 타이인 삼삼(Samsam)인들의 불교신앙, 타이의 말레이계 무슬림 공동체, 같은 무슬림임에도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위해 저항하는 아체인들 등 수도 없이 많다. 그런 이유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연구하는 이들은 정치학, 인류학, 역사학, 경제학 할 것 없이 동남아시아에 익숙해지기 위한 첫걸음으로 겉핥기나마 종교부터 공부해야 한다. 동남아시아가 종교의 용광로, 신들의 대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