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경희대 교수(미래문명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한 글 갈무리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 쪽이 피해자 실명이 적힌 편지를 SNS에 공개한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를 경찰에 고소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2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 이름을 정보통신망을 통해서 공개한 것은 범죄행위”라며, 24일 밤 김 교수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난 23일 오후 2시27분 ‘박원순 시장 비서의 손편지’라는 제목으로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쓴 세 통의 편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 교수가 올린 사진에는 피해자 실명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 교수는 사진 속 이름을 지웠고, 논란이 커지자 해당 게시물을 비공개로 돌렸다.
김 교수는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박원순 시장 성추행 피해 고소인 A비서에 대한 사과문”에서 “시력이 대단히 나빠 자료 구별에 어려움이 있다. 이름을 미처 가리지 못했을 뿐 고의성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피해자 쪽은 김 교수의 페이스북 수정시간을 근거로 28분 동안 실명이 노출됐다고 했지만, 김 교수는 1~2분 정도만 공개한 뒤 곧바로 ‘나만 보기’ 기능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피해자 쪽은 김 교수의 실명 노출이 성폭력처벌법(24조 2항)을 위반한 것이라 보고 있다. 이 법은 성폭력범죄에서 수사·재판을 담당하거나 관여하는 공무원이나 그 직에 있던 사람이 피해자 인적사항을 공개(24조 1항)하거나, 누구든지 1항에 따른 피해자 인적사항을 피해자 동의 없이 신문 등 인쇄물이나 방송·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개(24조 2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인사청문회에서 성폭력처벌법 24조2항 내용을 인용하며 “(피해자의 실명공개는) 처벌법 적용대상이고,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편지에서 실명을 지웠는지’ 여부가 본질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런 상황이 방치되면 앞으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이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피해자가 일하면서 남겼던 메시지, 동료들한테 보냈던 웃음 표시 있는 카카오톡, 이런 것들을 은근슬쩍 노출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향후에 이런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지 공개 뒤 피해자에 대한 추가적인 ‘2차 가해’도 나타났다.
박재동 화백은 23일 <경기신문> 만평에서 피해자의 편지를 본 어린아이의 입을 빌려 “아빠, 4년간 성추행 당했다는데 이 편지는 뭐야”라고 묻는 내용을 담았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만평 비판 글을 올렸다. “가해자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나'와 가해자에게 분노한 '나'가 '분열'되게 만드는 게, '아는 사람' 특히 신뢰관계에 있던 사람에게 당하는 성폭력 고통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실명 편지가 인터넷이나 SNS 등에서 실시간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제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수사를 통해 누가 찾아서 어떻게 공개됐는지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쪽은 김 교수에 앞서 같은 편지를 이름을 가린 채 페이스북에 올린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도 김 교수와 같은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 변호사는 “김민웅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편지사진을 ‘민 전 비서관이 공개한 자료’라고 했기 때문에 함께 고소했다. 민 전 비서관의 글이 올라온 직후에 김 교수가 글을 올린 점도 고려했다”고 했다.
민 전 비서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저는 김 교수에게 준 적이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민 전 비서관의 글이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전부터 별도로 갖고 있던 사진을 올린 것”이라고 했다.
임재우 이주빈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