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나의 일상적인 공포
나의 일상적인 공포
쿠폰을 확인하겠다며 문을 두드린 배달원이나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집주인이나, 이번 살인예고남들이나 이들은 자신이 물리적으로 유리하며 충분히 여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알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돌아서서 웃던, 앞서가던 남자
배달원, 집주인에 경찰 사칭까지…
혼자인 여성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언제 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내 방은 역설적으로 가장 위험한 곳
이런 여성의 공포를 이용하려는
남성들이 더 공포스럽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전화를 한다고 한들 내 방이 어디인지를 드러내는 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계속 서 있는 건 더 위험하고, 경찰에 신고해봤자 입증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도망가야 한다. 뛰면 잡히지 않을까. 그때 집 앞에 묶어둔 내 자전거가 보였다. 이미 자전거를 푸는 순간 내가 사는 건물은 노출되겠지만, 우선은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달려가 자물쇠를 풀고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다. 그 사람이 쫓아올까 몇 번을 뒤를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많은 학교 근처의 24시간 카페로 달려갔다.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놀라 카페로 온 친구와 함께 그 긴 새벽을 멍하게 지새웠다. 그날 이후 주변에서 많은 것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여성에게 쿠폰을 확인하겠다며 계속해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는 배달원, 수리를 위해 비밀번호를 알려줬더니 몰카를 설치했다는 집주인, 택배를 가장해 여성을 성폭행하려던 남자, 혼자 사는 여자가 퇴근 후 집에 돌아갔더니 세탁기 위에 ‘외로우면 만나자’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 자취하는 여자, 혼자 사는 여자. 범행 표적. 뉴스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친구는 한 남자가 경찰을 사칭해 집 문을 열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옆집에서 신고를 해 진짜 경찰이 왔고 그사이 그 남자는 도망가버렸다고 했다. 이건 더이상 도시괴담이 아니었다. 이건 우리들의 현실이었고 경험이었다. 그제서야 나도 자각하고 있지 못했던 나의 오래된 습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혼자 사는 여자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온통 공감할 것투성이였다. 대부분의 우리는 놀랍게도 비슷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갈 때 항상 열쇠를 손으로 꽉 그러쥐는 게 습관이었다. 단단한 물체를 손에 쥐고 주먹을 날리면 그 타격이 훨씬 커진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다. 열쇠의 양 귀를 손안에 넣고 열쇠 구멍에 넣는 부분을 중지 옆으로 빼 단단히 그러쥐었다. 옥탑에 살고 있던 터라, 2층을 지나 옥탑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내 방문을 여는 순간까지 2년을 살면서 단 한번도 긴장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언제든 누가 튀어나와 위협하면 열쇠로 눈을 찍어버리는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그 긴장감은 내 방의 현관문을 열 때 가장 최고조에 달한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내 공간이지만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밀폐된 공간이므로 가장 위험할 수 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늘 그렇듯 빠른 속도로 불을 켜고 화장실 문을 있는 힘껏 열어젖힌다. 혹시나 누가 화장실에 숨어 있을까봐, 그걸 알아차리기 위해서. 있는 힘껏 누군가를 때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친구 ㄱ은 애초에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다닌다고 했다. 친구 ㄴ은 그다음 무조건 옷장 문을 열어본다고 했다. 혹시나 누가 숨어 들어가 있을까봐. 세탁기 위에 쪽지도 남겨 두고 가는 세상에. 공감한 공통의 습관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거리를 나갈 땐 반드시 불을 켜두어 혼자 사는 티를 내지 않는다. 그리 친밀하지 않은 사람과 집 주변에서 헤어질 땐 방의 불을 바로 켜지 않는다. 배달음식은 반드시 인터넷으로 ‘바로결제’ 해 불필요하게 배달원이 긴 시간 동안 집에 머물지 않게 한다. 친구 ㄷ은 아예 배달이 오면 방 앞이 아니라 건물 밖에서 받는다고 했다. 어쩌다 집 앞에서 받게 되면, 아예 현관문을 닫고 밖에 나가 받은 후 배달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야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택배기사가 와도 경비실에 맡기거나 집 문 앞에 놓고 가달라고 부탁한다. 집에 들어오면 꼭 이중잠금 장치를 걸고, 자다가도 가끔 벌떡 일어나 잠금장치를 확인한다는 소리에 우리 모두 ‘어, 나도 그렇다’며 깔깔거렸다.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먼저 기다리고 있으면 그냥 계단으로 올라간다. 나는 분명 안전불감증이라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사람이었는데, 이런 걸 보고 과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스스로 굉장히 의아했지만 그땐 이미 이런 습관들이 생겨난 후였다. 살인예고남들은 알고 있다 요즘 한 여성 유튜버를 향한 남성 비제이(BJ) 및 남성 시청자들의 살인 예고가 뜨거운 이슈다. 많은 오버워치 남성 유저들의 폭력적인 여성혐오 발언을 성별만 바꿔 똑같이 따라 한 여성 게이머를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이들은 여성 게이머의 신상을 턴답시고 얼굴을 공개하고 주소를 찾고 연락처를 뿌려댔다. 한 남성 유튜버는 여성 게이머를 죽이겠다며, 그 주소로 차를 타고 가는 모습까지 생중계했다. 그 여성 게이머가 혼자 살든 다른 사람과 함께 살든 이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여성은 언제나 실제적인 혐오와 폭력 속에 놓여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은 조금 더 위험에 노출될 뿐, 모든 여성이 겪는/겪을 수 있는 위험의 본질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2년 전에 나왔지만 놀라울 정도로 지금 상황과 흡사한 영화 <소셜 포비아>를 다룬 한 브런치 글(이서영님의 브런치, https://brunch.co.kr/@annwn/5)의 구절이 생각난다. “그들은 인실좆(‘인생이란 실전이야 ×만아’에서 유래)을 시키기 위해 혼자 사는 여성인 레나를 떼거지로 만나러 갔을 때, 자신이 물리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쿠폰을 확인하겠다며 문을 두드린 배달원이나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집주인이나 세탁기에 위협성 쪽지를 올려둔 어떤 남성이나, 이번 살인예고남들이나 이들은 자신이 물리적으로 유리하며 충분히 여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알고 있다. 한쪽에서는 여성의 안전과 반(反)여성혐오를 외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여성들의 공포를 되레 이용하고 있다. 나는 일상의 불안함이, 그리고 특히 오늘의 한국이 혐오스럽다.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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