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논의 없이 굴욕적 합의”
이대·고대·홍대 등 잇따라 동참키로
학자 170여명, 위안부 연구모임 결성
“세계 380여 학자와 해결방안 논의”
이대·고대·홍대 등 잇따라 동참키로
학자 170여명, 위안부 연구모임 결성
“세계 380여 학자와 해결방안 논의”
한국외국어대(외대) 총학생회가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고려대·성신여대 등 다른 대학도 총학생회 단위의 시국선언에 나서기로 하면서 대학가에 ‘12·28 합의’ 폐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외대 총학생회는 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외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위안부’ 문제 졸속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을 본인이 철저히 무시한 채 협상을 진행했다”며 “이 굴욕적인 한-일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사전 논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을뿐더러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조차 이전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 현 대한민국 외교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대학 내 위안부 피해자 관련 단체가 아닌 총학생회 차원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한 건 외대가 처음이다. 이날 외대에 이어 이화여대·고려대·홍익대·동국대 등도 시국선언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세훈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5일 교내에서 총학생회 차원의 시국선언을 한다. 이와 함께 ‘대학생 대표자 시국회의’에 참여하면서 공동행동 등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성신여대 등 다른 대학도 ‘시국회의’ 등을 중심으로 시국선언 발표와 공동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연구해온 교수들은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설립추진모임’을 결성하고 오는 12일 공식 출범하기로 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등 국내 학자 170여명이 참여하는 이 모임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달 9일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을 함께 발표했던 세계 380여명의 학자 등이 모여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지속적 논의의 장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글·사진 박수지 황금비 기자 suji@hani.co.kr
외대 총학생회의 시국선언문 전문
<한일 정부 간 일본군‘위안부’ 합의는 역사에 남을 굴욕. 정부는 한일 외교 합의를 즉각 폐기하십시오.>
지난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한일 정부 간 일본군‘위안부’ 합의가 있었다. 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표현까지 담으며 연내타결을 강력히 추진했다.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을 본인이 철저히 무시한 채 협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법적인 사과도,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책도 없이 단 10억 엔에 그들의 역사적 책임을 덮었다. 이 굴욕적인 한일 정부 간 일본군‘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생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의 사전 논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조차 이전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 현 대한민국 외교의 현 주소이다.
누구를 위한 협상이었습니까?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극히 당위적인 사안이다. 현 정부와 외교부가 협상에 들어가기 이전에 당사자들과 논의 한 번 없이 결론을 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한일 정부 간 일본군‘위안부’ 합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피해 국민들을 대변해 가해국에 합리적이고 강력한 요구를 하는 것을 바탕으로 협상에 임했어야 한다. 피해 국민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배려와 존중의 대상이다. 정부가 임의적으로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외교적 성과’를 위해 피해자들의 의견은 수렴하지도 않은 채 합의를 도출해낸 것은 도의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책임지지 않는 사과, 소녀상 철거, 10억엔 기금 출연은 올바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절대 아니다.
우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통해 전쟁의 고통과 아픔을 배우며 평화라는 가치를 가슴에 새겨왔다. 전쟁 재발 방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다. 그렇기에 전쟁범죄에 있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및 종결이란 있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인권이 짓밟힌 것은 더더욱 잊어서도 덮으려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전범국의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을 바탕으로, 인류가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은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사안으로 남아야만 한다. 우리는 식민지배와 전쟁이 가져온 아픔을 잊으면 아니 된다. 후손들이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우고, 교육해야 한다. 그렇기에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것은 지난 몇 년간 국민들의 염원을 모아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와 상징성을 묵살해버린 것이다. 또한, 이번 외교협상은 우리나라의 자존심과 역사를 10억 엔에 일본에 팔아넘긴 것이다.
정부는 한일 정부 간의 일본군‘위안부’ 합의 결과를 폐기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1876년 강화도 조약, 1905년 을사늑약, 세계 2차대전 등 우리나라가 겪은 역사적 굴욕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는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로 한평생 고통 받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분들께 법적 효력이 보장된 진심 어린 사과를 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10억 엔에 면죄부를 파는 것은 우리나라의 외교적, 역사적 과오가 될 뿐이다. 우리는 역사 앞에 부끄러운 행위를 “외교적 성과”로 치부하는 정부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시국선언을 선포한다.
2016년 1월 3일 일요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
이화여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문화공원 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한-일 협상 폐기를 주장하며 일본에 면죄부를 준 한국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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