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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주 80시간 노동은 여성 돌봄 부담 높이고 성차별 강화”

등록 2022-12-13 17:40수정 2022-12-14 11:12

전국서비스산업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14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윤석열 정부에 성평등 실현 책무를 요구하는 서비스노동자 1000인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서비스산업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14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윤석열 정부에 성평등 실현 책무를 요구하는 서비스노동자 1000인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안을 검토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가 1주 최대 노동시간을 80.5시간까지 확대할 수 있는 내용의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이 더욱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성차별과 가사·육아는 여성 몫이라는 성불평등한 인식이 여전한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이 여성 노동자의 돌봄 노동 부담을 가중시키고 여성을 저임금 노동으로 더욱 밀어 넣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성은 남성에 견줘 비정규직 비율과 저임금(중위임금의 3분의2 미만) 노동자 비율이 높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발표한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자료를 보면, 여성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30.6%)보다 높은 46.0%로 조사됐다. 또 오이시디(OECD) 자료를 보면, 지난해 여성 전체 임금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4.3%로, 남성(10.2%)의 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1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근로기준법이 대부분 적용되지 않아 장시간 노동이 기본값인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많고, 여성 노동자가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장시간 노동은 여성 노동자가 아이 돌봄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하고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은 가정 내 성평등과도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2018년 7월 ‘주 52시간제’(1주 기본 노동시간 40시간, 1주 최대 12시간 연장근로)를 도입한 이후 남성 노동자의 가사·돌봄노동 참여 시간은 증가했다. 지난 8월 학술지 <이화젠더법학>에 실린 논문 ‘주 52시간 상한제가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에 미친 영향 : 성별 차이를 중심으로’를 보면, 저자인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과 남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주 52시간제 이후 가사노동 시간과 자녀 양육 및 가족 돌봄 시간 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5점 척도(1점 전혀 증가하지 않음·5점 매우 증가함) 방식으로 조사했다. 지난해 9월 100인 이상 규모의 제조업, 정보통신업,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기업에서 일하는 30∼49살 여성 303명, 남성 3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조사 결과 남성의 가사 시간 증가 수준(3.33점)이 여성(3.27점)보다 높았고, 남성의 자녀 양육 및 가족 돌봄 시간의 증가 수준(3.28점)도 여성(3.22점)보다 높았다. 그런데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제도가 다시 시행된다면, 출산한 여성에게 엄마 역할을 강요하면서 남성에겐 아빠 역할을 배제하는 성별 분업 구조는 다시 견고해질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대부분의 돌봄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된 상황에서 표준 노동시간을 늘리면 여성은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기 어렵다”며 “여성 노동자는 자유로운 개인 시간과 여가를 갖지 못하고 더욱 극심한 시간 빈곤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균 노동시간을 줄여서 성별 구분 없이 모든 노동자가 돌봄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연구회는 현행 주 단위인 초과근무 관리 단위를 월·분기·연 단위로 바꿀 수 있는 조건으로 노사 합의를 제시했지만, 여성 노동자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사업주에 의해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회는 12일 현행 주 단위인 연장근로의 단위 기간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은 노동시장 개편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주에 하루를 쉬더라도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에 1주에 7일 근무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어, 특정 주에는 매일 11.5시간씩 7일 최대 80.5시간까지 노동시간이 늘어난다.

연구회가 밝힌 임금체계 개편안도 우려를 낳고 있다. 연구회는 호봉제 등 연공급 중심의 틀을 벗어나 직무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성 노동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부터 업무 배치, 승진 등에서 차별을 받는 일터에서의 젠더 불평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직무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가 공정할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진협 공동대표는 “남성 중심 조직 문화 속에서 이뤄지는 인사평가에서 여성들이 하는 일이 저평가된 상황”이라며 “사업장 내 젠더 불평등 해법 없이 직무급 임금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허울만 좋을 뿐인 방안이다. 저평가된 여성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하고, 남성 중심 일 문화를 해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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