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성가족부가 동거 및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 등을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뒤집고 ‘현행 유지’ 방침을 밝혔다.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만 인정하는 현행법의 ‘가족’ 규정 탓에 사실혼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힌 여가부가 윤석열 정부 들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정부가 시민의 삶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가부는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정의하는 ‘가족’ 규정에 대한 입장을 종전과 달리 현행 유지로 변경했다고 25일 밝혔다. 2005년 시행된 이 법은 ‘가족’을 줄곧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확대되면서, 비혼 출산과 동거·1인 가구 등 가족 구성이 다양해졌다. 이에 현실의 다양한 가족 유형을 정책 지원 대상에 포괄할 수 있도록 ‘가족’ 정의 규정을 삭제하고 법 이름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남인순·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9월과 11월 각각 대표 발의했다.
당시 여가부는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가족 형태 변화에 맞춰 가족 서비스 확장이 필요한데도, 현행법의 가족 개념에 따라 정작 지원이 필요한 가족, 예를 들면 학대피해 아동 등을 돌보는 위탁가족, 동거 및 사실혼 부부, 특히 고령사회 대응 차원에서 지원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노년의 동거부부 등이 가족정책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가부는 이런 입장을 반영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지난해 4월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한다”는 이유를 들어 여가부가 애초 입장을 바꾸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는 “개인이 누구와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어떤 돌봄을 실천할 것인지 기획하는 주체는 국가가 아닌 개인이고, 개인이 원하는 삶을 권리의 이름으로 보장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며 “이미 많은 시민이 남녀 간 혼인 또는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함께 살면서 의지하는 관계를 ‘가족’이라고 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존 가족 규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2020년 여가부 조사에서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데 동의한 응답자 비율은 69.7%에 달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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