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하는 현판식이 2010년 3월19일 서울 무교동 청사에서 열렸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행을 위해 부처의 기능을 복지부·교육부 등 유관 부처로 이관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표적인 여가부 폐지론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 사실상 실패한 조직개편안이라 주목된다. 이른바 ‘실용정부’가 효율성을 이유로 다시 여성가족부로 확대재편한 과정은 새 정부에 함의하는 바가 커 보인다.
“이제는 여성정책의 외연을 아주 확대해서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 데도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제들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는 가족과 청소년 등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은 여성부에 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2009년 11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창립 50주년 기념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1년9개월 동안 축소시켜 둔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다시 확대개편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전 여성가족부로의 ‘원상복귀’ 뜻을 처음 내비친 자리였다. 당선자 시절부터 고수했던 여성부 폐지·축소 방침을 결국 철회한 것이다.
실용정부도 여성부로 축소했다 여가부로 원상복귀
이 대통령은 2007년 12월 당선 직후 여가부 폐지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외견상 ‘실용정부’ 구상에 맞춰 대부처 위주로 정부조직을 개편해 부처 간 장벽과 중복을 없애 정책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반대는 거셌다. 여성·노동계가 여가부 존치를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했고,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섰다. 노 대통령은 2008년 1월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당선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성부가 왜 생겼고, 그것이 왜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는지, 그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까? 보육과 가정교육의 중요성, 가족의 가치를 살려보자고 여성부의 업무로 해놓은 것입니다. 여성부에서는 귀한 자식 대접받던 업무가 복지부로 가면 여러 자식 중의 하나, 심하면 서자 취급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이명박 당선자의 인수위 시절 여소야대(대통합민주신당 137석·민주노동당 9석, 한나라당 130석) 국면이었다. 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에서 ‘가족’에 해당하는 업무(청소년·가족)를 떼어 보건복지부로 옮겨 ‘보건복지가족부’로 만들고,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축소해 남기는 선에서 타협했다. 변화는 ‘효율’을 보장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먼저 나온 판단이었다. 2009년 11월3일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현재 윤석열 당선자 대변인)은 “가족 해체, 저출산, 다문화가정 등 현안들에 대해 좀더 효율적인 대응을 하려면 여성부가 지금보다 좀더 종합적인 가족정책을 수립·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백희영 당시 여성부 장관도 그해 11월23일 국회 여성위원회 정기회의에 출석해 “(현 직제가) 여성정책을 확고히 한다는 여성부의 목적,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인생주기를 종합적으로 한다는 목적, 양쪽 목적에 미흡한 것을 양 부처에서도 느꼈다”고 했다.
진보당 6·1 지방선거 기초의원 예비 후보와 당원들이 3월25일 오전 대통령 당선인 집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선인의 대선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폐지할 것을 촉구한 뒤 ‘폐지’ 글자를 찢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명박 정부 때 국회 여성위원회·여성가족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았던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한겨레>에 “야당이 아니라 정부 안에서 먼저 도저히 (현 직제로) 업무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가족·청소년 업무를 다시 여성부로 이관한 것”이라며 “여성가족부는 고유의 정책과 더불어 각 부처의 성평등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예산 900억짜리 다른 부처 실·국보다도 못한 부처의 장관이 이 역할을 할 수가 있었겠냐”고 했다. 부처에서도 문제들이 불거졌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서로 결이 다른 정책이 한 부서로 묶여 업무가 비대해졌고, 여성부는 예산·인력·권한이 과도하게 축소되어 정책 실행력이 떨어졌다. 그해 성별 기회·지위 격차를 국제 비교 분석하는 성 격차 지수(GGI, 세계경제포럼의 ‘2009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가 한국은 134개국 가운데 115위로, 2007년(97위), 2008년(108위)보다 하락했다.
이명박 정부는 결국 2010년 3월19일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되돌린다.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슬그머니 여성부는 여성가족부가 됐다. 이때 공동발의자가 현재의 윤석열 당선자 비서실장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다. 당시 가족·청소년 정책을 여기저기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생긴 행정력 낭비, 정책 수혜자인 시민의 혼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나 설명은 없었다.
윤석열 당선자 인수위에서는 12년 전 이명박 정부가 실패한 방안을 여성가족부 폐지 시나리오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가족정책은 보건복지부로, 청소년정책은 교육부로 이관하는 방안이다. “저출산·가족해체 등을 여성부가 종합 대응하는 게 효율적”이라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교훈을 뒤집는 방식인 셈이다.
우수한 성평등 추진체계를 갖췄다고 평가받는 독일의 경우, 가족·청소년·여성 정책을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가 종합 대응한다. “인구 감소, 고령화, 사회구성원의 다원화, 가족 형태의 다양화, 자녀 돌봄 문제, 여성 취업인구 증가, 노인 돌봄 문제 등에 대한 ‘통합적 대응’의 필요성이 높았기 때문”이다.(‘해외 여성정책 추진체계 조사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6)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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