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6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6일 정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열리고 있다. 1992년 1월8일부터 열린 수요시위는 4주 뒤엔 1500차를 맞는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두고 법원이 잇따라 엇갈린 판단을 내놓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피해자들이 1차와 2차로 나눠 제기한 소송에서 한쪽만 승소한 데다, 승소 판결 이후 소송비용 청구나 재산명시 신청 결정 과정에서도 재판부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려 피해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국내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심리한 게 사실상 처음이고, 재판부마다 국제관습법 등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위안부’ 피해자 1, 2차 소송을 맡은 하급심 재판부의 판단이 갈린 대목은 크게 두가지다. △일본에 국가면제(주권국가는 다른 나라 법원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국제법 원칙)를 적용할 수 있는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도 피해자가 손해배상소송을 내는 게 가능한지다. 관련 소송 결과에 따른 일본과의 외교관계 등에 대한 판단도 갈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당시 재판장 김정곤)는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의 손해배상소송(1차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며 ‘일본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게 아니라 국제질서 변동에 따라 계속 수정되는 것이며,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지,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 배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국가면제를 비교적 폭넓게 해석한 셈이다.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도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인만큼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고, ‘위안부’합의 관련해서도 “피해자들의 위탁 없이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처분할 수 없다”며 피해자가 소 제기를 통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지난 4월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 20명의 2차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원고들은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소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2차 소송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이 ‘불법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가 부정된다’고 변경되진 않았으므로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해야 한다”며 1차 소송 재판부에 견줘 국가면제를 보수적으로 판단했다. 유럽 여러 국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송을 냈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국가면제를 이유로 각하했다는 사례도 들었다. 재판부는 2015년 ‘위안부’합의에 대해서도 “상당수 피해자에게 현실적인 보상이 이뤄졌다”며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급심 판결이 이렇듯 제각각인 데에는 재판부의 법리 해석이 첨예하게 갈리는 데다,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소송이 국내에서 처음 제기됐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소송은 일찌감치 제기돼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피해자 승소 확정판결로 이어졌다. 이후 하급심 재판부는 대체로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하고 있다. 반면 ‘위안부’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앞서 미국·일본 법원에서 제기된 적 있지만, 국내에서는 2015년 제기된 1차 소송이 국내 첫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소송이다.
하급심의 각기 다른 판단은 소송비용이나 소송 관련 재산명시 결정을 두고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1차 소송에서 승소한 원고들이 배상금을 추심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재산목록을 공개하라’는 재산명시 결정을 내렸다. 남 판사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살인, 강간, 고문 등과 같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게 되면 국제사회 공동의 이익이 위협받게 되고, 오히려 국가 간 우호 관계를 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일본의 국가면제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대일관계 악화 문제 등은 행정부가 다룰 문제로 사법부가 따질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3월 ‘소송에서 패소한 일본에 대해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가 국가면제론 등을 근거로 “일본에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과 대비된다. 패소한 쪽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재판부는 일본에 국가면제가 적용되므로 소송비용을 내라고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또한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의 국가적 위신과 관련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그동안 일본법원에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있었지만 1, 2차 소송은 국내에선 처음 제기됐다”며 “같은 법원이어도 개별 사안에 대해 다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재판부마다 판결이 다른) 상황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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