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14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정의기억연대의 주최로 제140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및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을 세계연대집회가 열렸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판결을 확정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손해배상금을 추심하기 위해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 소유의 재산 목록을 확인해달라며 낸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해당 재판부는 앞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외교 관계 우려’ 등을 이유로 각하한 김양호 부장판사와 달리,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강제집행 실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일관계 악화 (고려)는 사법부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지난 9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낸 재산명시 신청을 두고 “‘일본은 재산상태를 명시한 재산목록을 제출하라’고 결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배 할머니 등은 일본을 상대로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월 1심에서 승소했고, 일본이 소송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그러나 소송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원고들은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 재산을 강제집행하는 방식으로 배상금을 추심하겠다며 지난 4월 강제집행 전 단계에 해당하는 재산명시 신청을 냈다.
남성우 판사는 “일본의 행위는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하므로 강제집행신청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국가면제(주권면제)란 한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 법원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국제법 원칙으로,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론에 따라 피해자들의 소송을 인정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살인, 강간, 고문 등과 같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게 되면 국제사회 공동의 이익이 위협받게 되고, 오히려 국가 간 우호관계를 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어떤 국가가 강행규범을 위반하는 경우 그 국가는 국제공동체가 정해놓은 경계를 벗어난 것이므로 그 국가에 주어진 특권(국가면제)은 몰수됨이 마땅하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이런 판단은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가 지난 3월 피해자 승소판결 관련 소송비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국가면제론을 들며 ‘소송비용은 일본에 추심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과 배치된다. 통상 패소한 쪽(일본)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 재판부는 ‘국고에 의한 소송구조 추심결정’에서 “(피해자 승소로 판결한) 본안 소송은 일본 정부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 승소판결을 확정했다”며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그 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소송비용은 일본에 추심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결정을 내린 재판부는 최근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가족 85명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따르지 않고 각하 판결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재산명시 명령을 내린 남 판사는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각하 판결을 내리며 ‘외교관계 훼손’ 등을 이유로 언급한 김양호 부장판사의 판결과 반대되는 논리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남 판사는 “일본에 대한 강제집행 실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일관계 악화, 경제 보복 등 국가 간 긴장 관계 발생 문제는 외교권을 관할하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고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며 “이 사건 강제집행신청 적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고려사항에서 제외하고 법리적 판단만을 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남 판사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두고서도 김 부장판사와 판단을 달리했다. 김 부장판사가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됐다’, ‘피해자들의 강제집행 신청은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남 판사는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소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고, 이 사건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성격을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과 달리 볼 수 없다”며 “이 사건 강제집행 신청이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반하는 것으로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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