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13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양모가 탄 호송차가 법원을 빠져나가자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인 재감정에 참여한 법의학자들이 “췌장 절단(정인이 사인)은 발로 밟아서 발생했을 것이다”는 취지로 재감정 의견을 검찰에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에 따른 여러 차례의 골절로 “정인이가 통증으로 울지 못했던 아이다”는 의견도 나왔다.
1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정인이의 사인 재감정에 참여한 법의학자 2명은 정인이의 사인에 대해 ‘숨진 당일 발로 복부에 밟히는 강한 힘을 받아 췌장이 절단됐다’는 취지로 재감정 결론을 내렸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말 법의학 전문가 3명에게 사인 재감정을,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는 자문을 의뢰했다.
재감정에 참여한 ㄱ교수는 “췌장이나 장간막 파열은 발로 차거나 밟는 행위 혹은 둔기 등으로 맞은 경우에서 주로 발생한다”며 “발로 찼을 경우 접촉 면적이 좁아 배에 상처가 생기는 데 정인이의 경우 피부에 상처가 나지 않았다. (접촉 면적이 더 넓은) 발바닥으로 밟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양모가 지난해 9월 가슴수술을 받아 팔에 통증이 있었다는 기록 등을 통해 손으로는 강한 힘을 가하기 어려운 점도 고려했다.
재감정에 참여한 또 다른 법의학자 ㄴ교수도 “(정인이의) 췌장 절단 형태를 보면 앞쪽에서 강력한 힘이 작용해 압착된 모습이다”며 “아이를 잡고 등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외력이 작용한 것인데 발로 밟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양모 주장대로 양팔로 잡고 흔들다가 떨어졌을 경우엔 췌장 손상이 발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날 진행된 재판에서 양모쪽은 “(정인이가 숨진 당일) 정인이를 떨어뜨린 사실은 있지만 강한 둔력(주먹·발·둔기 등에 의해 뭉툭하게 가해지는 힘)을 작용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ㄱ교수는 “양모 주장대로 등 부위로 떨어졌다면 등뼈와 근육 등이 충격을 흡수해 복부 장기 손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추락했을 경우 장기 손상이 일어날 수 있지만 크기가 크고 경도(굳기)가 낮은 간이 먼저 손상된다. 하지만 정인이의 간은 훼손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교수 모두 살인 고의성의 판단에 대해선 검찰과 재판부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ㄱ교수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16개월 된 아이를 발로 밟으면 숨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고 말했다. ㄴ교수는 “일반인들에게 16개월 아이 복부에 강한 외력을 가할 경우 (살인) 고의가 없었는지 물어보면 비슷한 답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재감정 결과에서도 정인이가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는 모습도 다시 확인됐다. ㄱ교수는 “정인이는 6개월에 걸쳐 7번의 늑골 골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늑골 골절이 일어나면 울거나 웃기도 어렵다. 양모가 정인이에게 별로 울지 않는다고 했는데 통증으로 울지 못했던 아이다”고 말했다. ㄴ교수도 “시기가 다른 다양한 손상이 전신에 퍼져있고, 복부 내 섬유화도 여러 번 진행됐는데 지속적인 폭력에 의한 손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ㄱ교수는 이날 정인이 왼쪽 견갑골 압박 골절 사실과 상처 등을 토대로 왼쪽 겨드랑이 부분도 학대 당한 흔적을 확인해 검찰에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재감정 의견서 등을 토대로 전날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신혁재) 심리로 열린 정인이 양부모의 첫 공판에서 양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해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양부모쪽 변호인은 “고의성이 없었다”며 아동학대치사와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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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인이 숨질 줄 알면서도 폭행”…양모 “고의성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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