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1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제 8차 전원위원회의 모습. 국가인권위원회 누리집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의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 조항을 그대로 둔 정부의 낙태죄 입법예고안(형법 및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하라”는 최종 입장을 전원위원회에서 의결했다.
30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제19차 임시전원위원회를 열고 정부가 입법예고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표명의 건’을 의결했다. 의결 결과, 전원위원 11명 중 8명은 낙태를 형법으로 범죄화하는 규정을 담은 현 정부안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1명은 불참했고, 2명은 소수의견을 냈다.
이날 최영애 위원장은 “낙태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정부안에 대해 저를 포함 10명 중 8명의 전원위 위원들은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담으려 노력했다는 것 인정하나, 형법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성이 임신중단을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지금 국제사회의 흐름은 형법으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에 대한 규율이 있는 나라가 여러 있겠지만, 골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범죄로 처벌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로부터 이번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인권위는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내용으로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놓고 지난 6일 상임위 의결에 부쳤다. 하지만 내부 의견 차이로 결론 내지 못했다. 이날 전원위 안건으로 재상정된 보고서에 대해 11명 중 10명의 전원위원이 참석해 찬반 의사를 표하고, 입법 방향 제시했다. 전원위는 인권위 최고 의사기구다.
이날 전원위에 안건으로 올라온 검토내용은 “정부 개정안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을 존치시켜 여전히 여성의 자기결정권, 재생산권 등 기본권 침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6일 제37차 상임위원회에서 이 보고서를 안건으로 올렸지만 상임위원 간 입장 차이로 인권위 차원에서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가 발의한 형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거듭 밝힌 정문자 상임위원은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헌재의 위헌 조항 사항을 그대로 두고 별도의 새 허용 조항을 만들었다. 여전히 국가가 낙태 허용 시기와 사유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재 결정에 반한다”고 말했다. “낙태 처벌조항 삭제하고 전면 비범죄화해야 한다”며 “낙태죄 관련 법 개정에서 주요 판단 기준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의 주문 내용에 귀속해야 하며, 유엔 조약기구의 권고를 인용해야 하며, 과거 인권위의 결정문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지난해 2월 낙태죄와 관련한 위헌소원에 대해 “낙태한 여성을 형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것임을 확인한다”는 결정문을 낸 바 있다.
박찬운 위원은 이미 국제사회의 흐름이 여성의 재생산권 차원에서 낙태 비범죄화로 가고 있으며, 낙태죄 비범죄화한 국제인권기구의 방향을 우리가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50년간 거의 모든 나라가 여성의 기본권 차원에서 낙태의 자유를 경험해왔다. 여성의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 논의는 오래된 논쟁일 뿐, 최근 국제인권기구는 여성의 인권 차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여성의 건강권, 여성의 재생산권에 입각해 논의하는 것이 낙태죄 논의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준일 위원은 “낙태죄를 반대하지만 정부안은 헌재의 결정을 담는데 충실했고 적절하다”는 내용의 의견을 냈고, 이 위원은 인권위 차원의 최종 의견에 함께 하는데 동의했다. 한편, 전원위원 중 이상철 위원은 ‘정부안은 적절하다’는 내용으로, 문순회 위원은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된다’는 내용으로 소수의견을 표했다. 조현욱 위원은 불참했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적절하다고 본 이상철 위원은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나름대로 충분히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보호받아야 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절충한 안”이라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24주를 기준으로 사회경제적 사유를 두고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과 같다”며 “형법은 윤리적, 전통적 관념 반영하는 법이기 때문에 낙태죄 전면 폐지가 일반 국민의 통념인지 의문이고 생명경시를 조장할 수 있다. 낙태죄 조항을 존치하고,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 지원과 보장하는 방안으로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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