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압수수색에 나선 5일, 정부세종청사 산자부에서 관계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과 관련해 검찰이 벌인 압수수색은 그 범위와 시점 면에서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압수수색 대상이 청와대까지 겨냥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광범위한데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언급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날 검찰은 원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한국가스공사 채희봉 사장실도 압수수색을 벌였다. 채 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추진할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었다. 감사원이 수사참고자료로 이첩한 자료 삭제·파기 부분을 넘어 원전 폐쇄 결정 과정 전체를 살펴보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감사원이 지난달 공개한 감사보고서에는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청와대 쪽으로부터 월성 1호기 재가동에 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 듣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에 조기 폐쇄를 압박했다는 내용이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애초 산업부는 한수원 이사회가 폐쇄 결정을 하더라도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보다 운영변경허가 기간(2년)까지 운영하는 것이 더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백 전 장관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 듣고 ‘조기 폐쇄와 즉시 가동중단’으로 방향을 수정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은 이 과정이 절차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산업부가 정책을 변경하는 과정에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감사원이 문제 삼은 부분보다 범위가 훨씬 넓다. 감사원은 원전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파기한 부분을 검찰에 이첩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와 무관한 채희봉 사장을 비롯해 2018년 당시 원전 정책 라인에 있던 고위직 인사들을 대거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했다. 이는 국민의힘이 고발한 수사 대상과 일치한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2일 백 전 장관,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 정재훈 한수원 사장 등 12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2018년 당시 원전 국장·과장 등이 최근에 옮겨가 있는 다른 부서들과 산업부 자료들이 취합되는 기획조정실 등을 모두 압수수색했다.
검찰 안팎에선 이번 수사가 청와대까지 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산업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윗선’을 추적한 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엮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이 유죄 입증은 쉽지 않지만, 수사 상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만으로 청와대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에 따라 이뤄진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의 정당성 여부는 애초 감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날 압수수색은 최근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행보와 맞물려 더 주목받았다. 검찰 안팎에선 지난 3일 윤 총장이 법무연수원 강연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엄벌하는 게 검찰개혁”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번 수사를 염두에 둔 ‘선전포고’ 아니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이후 재개된 윤 총장의 지방검찰청 순시 첫 방문지도 이번 수사의 주무를 맡고 있는 대전지검이었다. 대전지검 이두봉 검사장은 윤 총장 측근으로 분류된다.
검찰 고위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윤 총장으로서는 감사원의 수사 의뢰가 있어 의도를 가진 수사라는 비판을 피해 갈 명분이 있다”라면서도 “정부의 정책 결정 내용으로까지 수사가 번질 경우 또다시 윤 총장과 검찰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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