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3년차 이수연씨가 새로이 단장된 자신의 방 책상에 앉아 있다.
출생 직후 보육시설에서 삶을 배우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이수연(23·가명)씨의 홀로서기도 이미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 18살 보호 종료 아동으로 보육원을 나와 독립했을 때 수연씨는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할 많은 일들을 스스로 처리하거나 체념했다. 그중에서도 삶의 토대가 되어줄 집을 구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과제에 속했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등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된 엘에이치(LH) 소년소녀 전세대출 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부동산중개업소와 집주인 등을 상대하며 내 권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출을 받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여러 제약조건 속에 가능한 선택지도 적었다.
시설을 나와 몇달 동안 고시원에 머무르며 고심한 끝에 2017년 그가 처음 선택한 집은 원룸이었다. ‘풀옵션’과 신축의 편리함을 선택한 대가로 공간을 포기했다. 그러나 10제곱미터 남짓의 좁은 공간에서는 수면 외의 요리 등 일상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된 하루 끝에 들어와 쓰러지듯 잠들고, 잠에서 깬 뒤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래서 수연씨는 두번째 집을 구하며 ‘생활이 가능한 공간’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우리 사회 대다수 서민에게 영향을 끼쳤고, 수연씨도 당연히 그에 해당했다.
빼곡하게 이어진 주택들 사이 자리잡은 수연씨의 공간.
2019년, 그는 서울 어느 다세대주택가에 다시 집을 구했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큼 부엌이 작은 탓에 냉장고는 방에 두었고, 화장실의 3분의 1을 세탁기가 차지했다. 옆집 담벼락이 가린 창으로는 햇빛도 잘 들지 않았지만 좋았다. 그러나 계약 뒤 도배와 장판을 교체하려다 벽에 가득 핀 곰팡이들을 발견했다. 유독 큰비가 잦았던 올해 누수까지 겹쳤지만 집주인도 중개인도 원인을 찾기 어렵다고만 말할 뿐.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난관 앞에서 그는 체념했다. 그때에 보호 종료 아동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선상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던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이 닿았다. 마침 보호 종료 아동이 살 집을 따뜻하게 단장해주고 싶다며 인테리어 재능기부 문의도 재단으로 들어온 터였다. 처음 제안자의 아이디어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알려지며 뜻을 더하는 이들의 정성이 모였다. 그 마음들이 수연씨의 집을 고치고 사랑으로 채웠다.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이다. 누구에겐들 집이 절실하지 않겠는가. 다만 가족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집이란 삶을 추스르고 회복할 최후의 안식처이다. 만 열여덟살 어른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보호 종료 아동들 모두에게 수연씨가 겪은 기적 같은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비정상적인 기적에 기대지 않고도, 정상적인 시스템에 기반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홀로 설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정적인 주거를 공급하는 일은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먼저 풀어야 할 책임 아닐까.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20년 10월 9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