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남 목포시 서해어업관리단 전용부두에 북한군 총격을 받고 숨진 공무원(항해사)이 실종 직전까지 탄 어업지도선인 무궁화 10호가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서해 어업지도원의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이후 유족들이 악성 댓글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숨진 어업지도원의 아들 이아무개군은 지난 5일 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북쪽 해역에서 발견된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는데 나라에서는 설득력 없는 이유만을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저희 가족은 그 어떤 증거도 없기 때문에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가 없다”며 정부 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군은 “대통령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와 엄마, 동생이 삶을 비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아빠의 명예를 돌려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 편지는 숨진 어업지도원의 형인 이래진(55)씨가 공개했다.
하지만 편지 내용을 보도한 기사에는 유족들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잇따랐다. 한 누리꾼은 “옛날 박정희, 전두환 시대였으면 가족들 모두 안기부에 끌려가서 폐인 되고 빨갱이 집안이라 불렸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만하냐”고 썼다. 이 댓글에는 95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또 다른 누리꾼은 “네 아버지가 빚지고 월북하려다 죽은 것 때문에 전쟁 날 뻔했다”며 “자식이라면 국민에 엎드려 빌어라”라고 썼다. 친여 성향의 <오늘의 유머>, <클리앙>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아들부터 조사 들어가야 한다”, “내가 월북자 아들이라면 쥐 죽은 듯 사죄하며 살 거 같다”는 등 유족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근거 없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친여 성향을 드러내놓고 활동해온 한 누리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전 같으면 간첩단 사건으로 몰아 일가친척 풍비박산 낼 사건인데 요즘은 월북자 가족이 국정원의 조사도 안 받고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걸 보니 세상이 좋아진 게 확실하다”고 썼다. 이 게시글엔 “국민의힘 당원 아니냐”, “뒤에서 누가 코치하고 있냐”는 등 배후설을 제기하는 댓글이 달렸다.
유족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래진씨는 <한겨레>에 “돈벌이를 하려고 조카를 내세웠다는 글을 읽고 참담했다”며 “지금은 진상규명 활동으로 경황이 없지만, 나중에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는 “아직 동기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유족을 모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건 초기에 서둘러 월북설을 제기한 정부도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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