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 사망으로 직장운동부(실업팀)의 묵은 병폐가 드러난 가운데, 운동부 감독에 의한 횡령 의혹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체육계에선 관행처럼 퍼진 문제로, 지역체육회와 지방자치단체 방관 속에 선수 고통만 커지고 있다.
■ 시합출장비·훈련비 횡령 의혹 줄줄이
경기도청 감사부서는 지난 5월부터 정아무개 경기도청 수구팀 감독 횡령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이다. 선수 개인계좌로 지급되는 출장비를 주장 선수를 통해 걷는 방식으로 약 10년간 횡령한 혐의다. 선수들은 이 과정에서 숙박과 식사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감독은 2016년 선수들에게 지급된 격려금 중 약 1500만원을 상납받은 의혹도 받는다.
부산경찰청은 부산시체육회 배구팀 ㄱ 감독을 수사 중이다. 전직 부산시체육회 배구팀 선수로부터 4년간 훈련비·상금 약 2300만원을 착복한 혐의다. 역시 선수 개인계좌로 입금된 훈련비를 감독이 지정한 특정 선수 계좌로 입금하게 했다.
고 최숙현 선수가 뛰었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아무개 감독도 훈련비 유용 혐의를 받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지난 13일 김 감독을 훈련비 등 3억3천만원을 유용·편취한 혐의로 검찰에 추가 송치했다. 경주시청팀 선수들은 개인계좌로 받은 출장비·훈련비를 주장 선수 계좌로 입금해왔다.
■ 폐쇄적·수직적 구조가 빚은 병폐
직장운동부 선수들은 출장비·훈련비 등을 개인계좌로 지급 받는다. 하지만 감독이 이를 착복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수직적인 체육계 구조상 지도자의 말을 거부하기 힘들고, 회계처리도 필요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갹출 만으로도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선 이런 일이 관행처럼 벌어진다.
실제 직장운동부는 횡령 의혹으로 수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 부산 ㄴ구청 유도팀 감독은 출장비를 착복해 유흥비에 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6년 익산시청 펜싱팀 감독도 전지훈련비 횡령 의혹으로 사임했다. 2017년 춘천시청 태권도팀 감독 등은 횡령 혐의로 입건돼 이듬해 벌금형을 받았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역체육회와 지자체는 수수방관이다. 일각에선 유착 의혹도 나온다. 2016년 익산시청은 담당 공무원이 펜싱팀 감독과 유착한 사실을 적발해 청렴의무 위반으로 감봉 2개월 징계를 내렸다. 부산시체육회는 배구팀 ㄱ 감독에 대한 대한체육회 징계가 결정된 뒤에도 관련 절차를 차일피일 미루다 비판이 커지자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ㄱ 감독은 착복한 돈 일부로 체육회 고위관계자에 향응을 제공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결국 부산시의회는 “체육회 조사에 한계가 있다”며 이달부터 자체 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 7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스포츠 폭력 근절,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직장운동부 성격 근본적으로 바꿔야”
전문가들은 직장운동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주문했다. 허정훈 중앙대 교수(체육학)는 “훈련비 갹출 등이 적발될 경우 엄격히 처벌하고, 징계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지도자 채용 때 필수적으로 확인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자체 관련 조례나 규정에 훈련비와 포상금 등 갹출의 불법·부당성을 명시하고 사례 전파를 통해 예방적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직장운동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갹출·횡령 등이 “문화적 문제”라고 지적하며 “직장운동부를 낮에는 근무하고, 저녁에는 운동하며 시합에 나가는 곳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만 해야한다는 방식으론 더 폐쇄적인 구조가 될 것”이라며 “메달이나 성적이 아닌 다른 요소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시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