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내 새끼. 이걸 어쩌나"
어머니는 진흙더미가 된 살림살이 사이에서 무언가를 주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수돗물로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손주의 작은 증명사진이었다. 지난9일 무너진 제방에 큰 수해를 입은 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한 마을에서 노부부가 아침부터 어지러진 집을 치우고 계셨습니다. 밤새 집을 삼킨 폭우는 집안 살림살이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진흙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산같이 쌓인 그 진흙더미 안에서 그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작은 증명사진을 찾아내 제일 먼저 물에 씻어낸 뒤 햇빛 아래 놓아둡니다.
강원도 철원에는 지난 5일 폭우로 인근 마을들이 물에 잠겼습니다. 남금우씨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 처음 마을 조성됐을 때 이사왔습니다. 민통선 안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 뒤 1996년, 1999년 그 물난리도 이겨냈는데 또 한번 찾아온 물벼락에 집안 하얀 벽지에는 어머니의 어깨 높이에 물자욱이 남았습니다. 그 밑에 색이 더 진한 물자욱은 지난 99년 물난리때 생긴 것입니다. 취재진을 보자마자 "우리집 좀 봐봐요. 일로 와봐요" 하셨습니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던 어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액자 하나를 집어 맨손으로 진흙을 닦아냅니다. "우리 아들인데, 부산에서 경찰하고 있는데, 이거 졸업식때 찍은 건데, 오지도 못하고 속상해하고." 연신 액자를 닦던 어머니는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고 다시 집안을 둘러보다 한숨을 내쉽니다.
같은 날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마을 입구에는 진흙과 망가진 집안 살림살이들이 양쪽으로 쌓여있습니다. 슈퍼를 운영하는 할머니는 오전 내내 가게 물건들을 가게 밖으로 끄집어 내놨습니다. 대민지원을 나온 3사단 군인들이 집안 정리를 도와준 덕분입니다. 그러다 비닐봉지에서 액자 하나를 꺼내 깨끗한 물에 여러번 닦아냈습니다. 가족들 모두 곱게 차려입고 찍은 가족사진입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또. 여러번 깨끗한 물에 씻어냅니다.
전국 곳곳에 내린 폭우는 특히나 작은 시골 마을들에 큰 피해를 줬습니다. 산근처에 사시는 어르신들, 민통선 안 100가구 채 되지 않는 작은마을들... 어르신들에게 오래된 가족 사진만큼 소중한 물건을 없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폭우가 한 번에 망가뜨린 일상에서도 가족사진을 찾고 그 가족들 때문에 힘내실 거라 믿습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