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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집주인에게서 전셋값 올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등록 2020-08-15 07:42수정 2020-08-15 07:46

[토요판] 이런 홀로
옆집 사람들의 이사

큰 나무 잘리고 새 건물 들어서면
내가 그곳에서 밀려나게 되는 수순
여러 집 날짜 맞춰야 가능한 연쇄

자전거, 식당, 시장… 익숙한 동네
늘 듣던 옆집의 고양이 찾는 소리
여기서 또 누군가 무슨 인연 이어갈까
가끔 나는 언제까지 이사를 다녀야 할까 막막해진다. 마치 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 캠핑 사이트를 정하듯, 내가 좋아서 ‘그래, 여기로 하자’ 하고 정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것, 그 단순한 일이 이 도시에선 아마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가끔 나는 언제까지 이사를 다녀야 할까 막막해진다. 마치 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 캠핑 사이트를 정하듯, 내가 좋아서 ‘그래, 여기로 하자’ 하고 정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것, 그 단순한 일이 이 도시에선 아마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집 옆 건물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부산한 커플이 산다. 그들은 한번씩 집 앞 골목에 나와 고양이 털로 가득한 이불을 털고, 빨래를 널거나, 고양이를 잠깐씩 밖에 내보내 콧바람을 쐬게 해주곤 했다. 그러다 보면 고양이가 어딘가로 숨어버리거나 도망가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진구(가명)야’ 하고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를 꽤나 자주 들었다. 며칠 전에도 어김없이 “진구야! 진구 어딨니?” “거기 있어? 찾았어?”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소리가 사랑스럽고 좋았다. 내가 이 집에 이사 온 이래로 적어도 한두달에 한번은 꼭 그런 소란이 일어났다. 나는 거실 창을 열어두고 ‘또구만’ 하고 웃음 짓고는 했다.

그리고 어제 아침부터 소란스러워 또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이번엔 빨래 널기도, 이불 털기도, 고양이 산책도 아니라, 이삿짐센터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집 앞 골목에 부려놓은 짐들이 한가득이었다. 아, 떠나는구나.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저 낡은 집과 나를 두고 이 동네를 떠난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이 되었다.

큰 나무가 잘리면 어김없이 오는 수순

내가 사는 동네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가장 시끄러운 소리는 언제나 이삿짐 사다리차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다. 그때마다 또 누군가 이사를 떠나는구나, 누군가 이 동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미친 전셋값의 상승세는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얼마 전 집주인에게서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이 동네가 좋았고 이 집도 좋아했다. 내게는 이사 계획이 전혀 없었지만, 돈 천만원을 더 내라는 말을 지극히 사무적으로 전하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고 이제 어쩔 수 없이 이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내가 이 골목의 수호목이라고 생각했던 거대한 은행나무가 잘려나갔다. 정말로 거대해서 못해도 100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였다. 동이 터올 때마다 온 동네 참새들이 다 모여 가지 사이사이에 앉아 시끄럽게 지저귀었고, 여름이면 시원한 푸른 그늘을, 가을이면 풍성하게 노란 그늘을 드리우며 비처럼 은행을 떨어뜨렸다. 어느 날 나무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이제 그 자리에는 기존의 낡은 연립주택을 허물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창밖 풍경도 조금씩 달라져서 하늘의 절반은 공사 중인 아파트로 가려졌다. 그때부터 언젠가 이런 때가 올 거라는 생각을 마음 한쪽에 두고 살았던 것 같다. 서글픈 우연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동네에서도 똑같이 나 혼자 골목의 수호목이라고 생각했던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말처럼 잘려 사라지고 얼마 후 나는 이사를 했다. 약속한 듯 똑같은 진행이었다. 개발과 전셋값 상승과 이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의 한 단계로 ‘오래된 나무의 삭제’ 같은 항목이 어딘가에 쓰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가격대도 맞겠다 나도 모르게 오래된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골목이 좋아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 몇년 뒤 나무는 잘리고 새로운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그때쯤엔 내가 그곳에서 밀려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집을 찾았다. 교통편, 편의시설 등을 포기하면 어쩌면 현재의 자금으로 좀 더 좋은 집으로 갈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그리고 한 집을 보았고, 창밖으로 산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치에 반해서 덜컥 집을 계약해버렸다. 이제 몇달 뒤면 나도 옆 골목 고양이 커플처럼 이 집과 동네의 수많은 기억을 뒤로하고 이사를 한다.

무엇이든 바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독립한 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사를 딱 두번 했다. 늘 가능한 한 더 오래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외부의 조건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했던 이사였다.

지금 집에 산 지도 5년 가까이 지났다. 이 동네는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큼 이제 내게는 익숙한 곳이다. 한강이 가까워 산책하거나 운동하기 좋고, 시골 읍내 같은 거리의 식당과 술집은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로 가득 찬다. 드물게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활동하는 살아 있는 동네인데다 교통편도 비교적 편리한 편이고, 무엇보다 평지라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동네다. 막상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단골 식당, 창밖 풍경, 마을버스, 북적대는 시장 모든 것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내 삶의 동선을 생각해보면 이제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이상, 이 동네에 올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새로 이사하기로 한 곳은 좀 더 한적하고 자연에 가까운 동네다. 뒤로는 산이고 앞으로는 넘어지면 대로변까지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은 경사진 언덕이 있다. 편의점, 마트,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술집 같은 것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이제 나의 생활 방식은 아마 조금 변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자전거 타는 생활은 끝났고, 전동 자전거나 전동 스쿠터 같은 것을 검색해보지만 경사진 곳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만 깨닫는다.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자동차 구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양이와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옛 문헌이나 윗세대가 쓴 책 같은 것에서 한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나는 언제까지 이사를 다녀야 할까 막막해진다. 마치 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 캠핑 사이트를 정하듯, 내가 좋아서 ‘그래, 여기로 하자’ 하고 정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것, 그 단순한 일이 이 도시에선 아마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물며 이사 하나도 내가 원하는 날짜에 할 수가 없는 게 이 도시의 생리다. 이사 날짜를 정하면서 총 네 집의 이사 날짜를 동시에 맞춰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살고 있는 내 집에 이사 올 사람, 나, 내가 이사 갈 집에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 그리고 그 세입자가 새로 이사 갈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까지. 생각해보면 그런 이사의 연쇄가 지금 이 도시에서 끝없이 팽팽 돌아가며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커플을 창밖으로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 집에 온 이래, 그들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커플이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로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며. 그러니 적어도 나와 비슷한 시간 동안,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이 동네에 살았을지 모른다. 그들은 또 저 사고뭉치 고양이와 털로 범벅이 된 이불을 싸들고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내 이삿짐이 모두 빠지고 마지막으로 텅 빈 집을 바라보게 될 순간을 떠올렸다. 내가 5년간 살았던 이 집에 새로운 짐을 부리게 될 사람에 대해서도. 그는 거실에 앉아 창밖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들을 들으며 또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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