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고 최숙현 법안’으로 불리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체육의 목적이 국위선양에서 건강한 공동체 형성으로 바뀌었다. 메달과 성적의 굴레에서 탈피해, 즐거운 스포츠로의 정책 전환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발의한, 이른바 ‘최숙현법’으로 불리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법의 1조인 ‘목적’에서 “국위선양”이라는 문구가 삭제됐고, 대신 “연대” “공정” “인권” “행복” “자긍심” “공동체” 등으로 대체했다. 스포츠의 가치나 개인의 즐거움, 인권과 행복한 삶 등 새로운 시대 가치를 대폭 반영했다. 새 법은 공포 6개월 뒤 시행된다.
1962년 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은 한국 국가체육을 규정하는 최상위 법이었다. 1982년 개정되면서 ‘체육을 통한 국위선양’이 추가됐고, 이에 따라 메달·성적주의에 치중한 정책이 정당화됐다. 현장에서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선수 육성이 이뤄지면서 지도자의 강압, 선수에 대한 폭력, 학생 선수 수업권 박탈 등 여러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최근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인 선택은 국가주의 체육문화가 일상화되면서 나온 비극이었다. 이에 임오경(민주당), 이용(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발의한 12개의 개정안을 통합 조정해 새 법을 마련했다.
이영열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은 “최숙현 선수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고, 피해자 보호, 성적중심주의 문화 개선을 위한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담았다”고 설명했다.
새 국민체육진흥법에는 지도자, 선수 등이 체육계 인권침해 및 스포츠 비리를 알게 된 경우 스포츠윤리센터 등에 신고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이 추가됐다. 신고 의무제는 선수 인권침해가 내부적으로 은폐되는 것을 막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의 지원과 관리·감독을 받는 스포츠윤리센터는 사건이 접수되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 긴급보호 등 필요한 조처를 먼저 취하도록 했다. 신고인 신분을 노출하는 행위에 대해, 관련자가 속한 기관·단체의 장에게 당사자를 징계하도록 문체부 장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조사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사기관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이 밖에 직장운동부 선수가 소속 기관·단체의 장과 계약할 때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 등을 필수적으로 기재하도록 하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도록 했고, 팀 닥터 등 선수 관리 담당자를 따로 둘 경우 이를 대한체육회 지부 등에 등록하도록 했다. 취약 공간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도 삽입했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학)는 “체육의 목적을 정한 주어-술어의 관계에서 국위선양이 서술어로 돼 있던 것을 스포츠 가치나 국민 행복으로 바꾼 것은 시대적 요청이다. 메달이나 성적이 아니라 건강과 여가, 자아실현 등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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