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들과 이용 의원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피해 실태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국회에서 경찰의 축소 수사와 감독·트레이너 등의 추가 폭력을 폭로했다.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억울하고 외로웠던 숙현이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의 왕국이었고, 폐쇄적이었다. 한 달에 10일 이상 폭행을 당했으며 욕을 듣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경주경찰서 등의 초동수사 과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선수들은 “경주경찰서 참고인 조사 때 담당 수사관이 ‘최 선수가 신고한 내용이 아닌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일부 진술을 삭제했고, ‘벌금 20만~30만원에 그칠 것이다. 고소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라’며 사실상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폭행 주도자로 김아무개 감독과 ‘실세’로 알려진 주장 선수 장아무개씨를 재차 지목했다. 선수들은 “감독은 숙현이와 선수들에게 상습적인 폭행·폭언을 일삼았다. 주장 선수도 숙현이와 동료를 집단 따돌림 시키고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몰려든 기자 100여명은 귀를 쫑긋 세웠고, 카메라 플래시도 쉴 새 없이 터졌다. 고인이 그토록 원했던 관심과 도움이지만 사회는 한발 늦게 귀를 기울였다.
■ 경찰 ‘축소수사’ 의혹
선수들은 경찰의 소극적 부실 수사가 고인을 사지로 내몰았다고 봤다. 이들은 “감독 등이 벌금형을 받는 데서 그치면,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대회장에서 이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며 공포에 떨었다.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경찰 조사 뒤 그들이 느낀 건 경찰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안도감이 아니라 “훈련을 하지 못할 정도의 불안감”이었다. 추가 고소는 언감생심이었다.
실제 전·현직 경주시청팀 선수들은 지금도 불안을 호소한다. 전직 선수 ㄱ씨는 <한겨레>에 “차라리 팀을 해체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이 다시 지도자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은 애초 8명의 피해 선수와 접촉했으나, 기자회견에 나선 건 2명뿐이었다. “맞고소와 선수 생활 과정에 있을지 모를 보복이 두려웠다”고 선수들은 말했다. 그만큼 심적 부담이 컸다는 의미다.
■ 감독과 특정 선수의 왕국
이들은 성추행과 금전 갈취 의혹도 추가로 제기했다. 대회 성적에 따라 나오는 인센티브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국제대회에 나갈 때마다 나오는 지원금 80만~100만원도 주장 선수 이름의 계좌로 입금하도록 강요받았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트레이너가 “치료를 이유로 신체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성추행 의혹도 새로 제기했다. 또 트레이너가 “심리치료를 받는 숙현 언니를 ‘극한으로 끌고 가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팀 김아무개 감독과 선수 2명은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질의에 증인으로 나와 “폭행한 적이 없다.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 “체육계, 자정능력 상실”
지역 스포츠팀 내부 사건이 왜 국회까지 왔을까. 문제를 덮는데 급급한 체육계의 폐쇄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 체육계는 팀, 지역, 종목,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순으로 상급단체가 이어진다. 문제는 해당 팀이나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를 통보하지 않으면 상급단체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아마추어 체육 관계자는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팀에서 처리한다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 이를 해결 못 하고 상급단체로 오면 무능력한 지도자란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선발권, 해당 팀 입단 여부 등 선수의 생살여탈권을 감독이 쥐고 있는 현실에서 부당한 폭력을 당한 선수가 이를 고발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행은 선수들의 내부 고발 의지를 꺾는다. 2018년 대한체육회 스포츠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선수 1천여명 가운데 70% 이상이 “고발해봤자 도움 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대한체육회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날 문화연대 등 40여개 시민단체는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어 “무능하게 사태를 방치해온 대한체육회 등에 진상조사를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진상조사단은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전문인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준희 이정국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