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들에 대해 책을 읽어 모두 알고 있다는 나의 태도, 일방적인 잣대로 해석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그들과 더욱 멀어지는 경험을 만들었다. 노력하면 할수록 나의 노력은 일방적이었고 그들은 뭘 어쩌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 인생의 첫 90년대생은 대학교 후배였다. 1987년생인 나랑 따지고 보면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지만 앞자리에 ‘9’가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까워지기 힘든 사람일 거라고 쉽게 단정 지었다. 90년대생과 함께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좀 징그럽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뒤로도 나는 차곡차곡 늘어나는 90년대생들과 홀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교수님의 발언 때문에 나는 또 한번 그들과 멀어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 진지할 게 하나도 없는 말들이었다. 그건 교수님의 유치한 ‘도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즘 친구들의 우수함을 거론하며, 이를테면 지금 내가 다시 자신의 수업을 듣는다면 형편없는 학점을 받을 거라는 거였다. 입학 전부터 갖춘 뛰어난 외국어 실력부터 당당한 태도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에서 교수님은 90년대생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했다. 아주 잠깐, 내가 교수한테 무슨 큰 잘못을 했나 싶어 머리를 굴려봤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여기에 몇해 전 출간된 책 <90년생이 온다>(임홍택)는 그 이름에서부터 참 사람을 자격지심 덩어리로 만들었다. 아직 30대인 나를 단숨에 늙은 아저씨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왔으니 이제는 비키라는 식의 말투에서 건방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필이면 요즘 들어 ‘내가 꼰대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던 때였다. 이렇게 쉬이 발끈하는 걸 보니, 그게 맞긴 맞는가 싶으면서도 끝까지 저항해보겠다는 못난 오기가 발동했다.
그들을 이해하고 분석했다며 해설판처럼 등장한 이 책은 빠른 시간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90년대생인 그들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들이 책 한권으로 분석 가능한 존재일까. 다가가려 노력할수록 오히려 점점 멀어지는 듯한 건 그저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사실 그들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하건 별 관심이 없다. 우리가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만 더욱 비참해질 따름이다.
이해하려 들수록 더 깊은 늪으로
얼마 전에 친구들과 재미 삼아 만들고 있는 팟캐스트에 90년대생인 유튜버를 섭외해 녹음을 한 적이 있다. 그 유튜버는 수십만의 조회수를 가볍게 만들어내는 셀럽이었으나 정작 나는 처음 듣는 이름과 얼굴이었다. 주변 사람 누구에게 물어도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게스트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미리 공부한답시고 살펴본 영상 속 유튜버의 모습은 재기 발랄함 그 자체였다. 가끔씩 모르는 단어들이 조금씩 섞여 들렸으나 요즘 큰 소리로 음악을 들은 탓이려니, 애써 외면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도대체 이게 뭐가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들 보는지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있으려고. 내가 또 배움이 빠른 사람 아닌가.
실제 만난 90년대생 유튜버는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녹음 전 사전 교감을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봤으나 왠지 시큰둥해 보였다. 낯을 좀 가리는 거 같기도 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건가 싶어 안쓰러운 마음에 대신 내가 더 파이팅 있게 녹음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긴장하지 말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건방진 조언을 건넸다.
녹음이 시작되고 빨간 불이 들어오자 이 친구는 영상 속에서 봤던 셀럽 유튜버의 모습으로 모드가 단숨에 바뀌었다. 우리가 미리 전달한 질문들 중 하필이면 내가 작성한 질문을 콕 집어 제일 별로였다고 돌직구를 날리더니 급기야는 아무렇지 않게 “너무 ‘노잼’ 아니냐”며 하품을 날리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예의 없는 게 아닌가 싶어 울컥하기도 했지만 화를 냈다간 누구에게도 지지를 받기 힘들 게 뻔했다. 그저 고개를 몇차례 좌우로 흔들며 멘탈을 잡아야만 했다. 동시에 묘한 승부욕이 일었다. 어떻게든 저 친구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 요즘 친구들이 많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과 단어들을 맥락도 없이 마구 남발하며 나의 트렌디함을 마구 뿜어내며 다짜고짜 어필을 시도했다. 그럴수록 유튜버의 표정은 점점 “뉘예뉘예”에 가까워졌고 나는 차츰 전의를 상실해갔다.
쿨한 척하는 순간, 이미 쿨하지 않은
어쨌건 녹음은 무사히 마쳤다. 보통은 그때부터가 진짜 민망한 순간이다. 주말에 시간 내어 찾아온 게스트에게 출연료도 주지 못한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런 우리의 머뭇거림에 게스트들은 먼저 ‘차 한잔하고 가자’거나, ‘술이나 저녁을 사달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먼저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확실히 낌새가 평소와 달랐다. 게스트로 온 90년대생 유튜버의 표정에서는 자기 할 일을 다 마친 후련함만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늘 그렇듯 미안한 마음에 저녁이라도 사주려, 정 아니면 커피라도 손에 들려 보내주려는 우리의 질척거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홀연히 지하철역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주말에 예상치 못한 노동을 했으니 빨리 집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말이다. 약간의 민망함이 몰려왔다. 애써 쿨한 척하며 외국물 좀 먹은 사람인 양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내가 더 잘 안다. 그 순간 이미 내 모습은 너무나 쿨하지 못했다는 걸. 심지어는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그 친구의 퇴장이 조금은 부럽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녹음하는 동안 내가 그에게 던진 질문이 대부분 너무도 획일적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생은 모두 개개인 그 자체인데 나는 20대라는, 그리고 90년대생이라는 큰 바구니에 그들을 마구 몰아세우고 억지로 담아두려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 90년생은 더이상 20대가 아닌 30대이기도 하다. <90년생이 온다> 같은 책들이 사회적으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내가 만난 90년대생은 애초에 별다른 배려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특별한 관심에 콧방귀 뀌며 거부감을 보일 따름이었다.
마치 이들에 대해 책을 읽어 모두 알고 있다는 나의 태도, 일방적인 잣대로 해석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그들과 더욱 멀어지는 경험을 만들었다. 노력하면 할수록 나의 노력은 일방적이었고 그들은 뭘 어쩌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팽팽한 대치가 지금의 현실을 만든 것이다.
관계를 위한 관계는 무의미할뿐더러 서로의 간극만 멀게 할 따름이다. 애초에 그들을 도깨비처럼 바라보고 억지로 테두리 안에 넣어두려 한 건 나였다. 어쩌다 아저씨가 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이제는 그들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만나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집중하자.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가 끝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신은 없다.
날아라 통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