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생일이 시험날처럼 느껴지곤 한다. 내가 받은 메시지와 선물의 수는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로 차곡차곡 쌓여 영원히 나를 괴롭힐 것만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톡 생일 알림이 바꾼 문화
만약 손오공이 ‘근두운’을 딱 하루만 빌려줘 타고 다닌다면, 그 하루와 그 기분은 아마도 생일날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일은 그런 날이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넘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기분. 왠지 그날은 온종일 설레는 일들이 가득할 것 같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축하와 선물들에 정말로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어렸을 때는 맥도날드에 친구들을 초대해 해피밀 세트를 먹는 게 영화 속 뻔한 클리셰와 같은 생일날의 그림이었다. 누군가의 생일에 초대받고, 또 많은 친구가 찾아오는 생일잔치에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쭐할 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보온병에 담아 온 미역국을 건네는 친구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연락도 없이 지방에서 불쑥 올라온 친구들 덕분에, 감동과 행복이 가득한 날로 생일에 대한 기대감은 해가 거듭될수록 커져갔다.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선물과 특별한 축하에 대한 기대가 욕심처럼 불어났고, 어떨 때는 예상에 못 미치는 결과물에 실망하는 내 모습에 실망과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했다.
결론을 내렸다. 생일을 피해 숨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건 내 생일로 인해 점점 좁아지는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경험하면서부터였다. 생일이면 어김없이 수년간 축하를 해주던 후배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후배의 생일을 놓치기 일쑤였다. 뒤늦게 알게 돼 축하보다 미안함을 전하는 일이 많았다. 비단 이 후배뿐이 아니었다. 나의 수많은 배은망덕함에 스스로 분노를 느끼며 마음을 다잡고 한동안 매일같이 숙제하듯 메신저의 생일 알림을 확인했다. 그렇게 한동안 갖은 생일들을 챙겨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무언가를 받아 놓고, 정작 상대방의 생일은 챙기지 못하는 관계들에 자꾸만 맞닥뜨리면서 좌절감이 늘었다. 생일이란 단어에 좌절과 실망 같은 단어가 가당키나 한가. 그러다 문득 발칙한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일을 숨겨야겠다!’
5월이 되자마자 생일 알림을 껐다
생일을 숨기는 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별다른 고민의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꾹 닫은 내 입과 메신저의 ‘생일 알림’만 끄면 될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몇년 전부터 메신저에 지인들의 생일이 알림으로 뜨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평소에 잘 보지도 않던 친구 목록을 살펴보다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의 생일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건 애매한 관계이거나 비즈니스가 얽혀 있을 때 더했다. 괜히 내가 뭔가를 바라고 있다는 의도로 비칠까 싶어서, 혹은 나와 달리 상대방에게는 그게 부담일지도 모른다는 염려의 마음 때문이었다.
확실히 예년에 비해 무척이나 조용한 생일이었다. 자정이 되자마자 시끄럽게 울리던 휴대전화도 조용했다. 어색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문득문득 ‘외로움’ 비슷한 감정이 스쳐가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건 첫 시작의 어색함과 적응의 문제일 뿐이리라. 그런 사소한 감정들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생일날은 예상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하필 그날 부서원들과 함께한 점심 식사에서 평소보다 비싼 메뉴를 제안한 부장의 모습에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긴 했으나 다행히도 ‘역시나’였다. 묘한 안도감이 들면서 내 생일날 운 좋게도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니 대놓고 챙김을 받을 때보다 기분이 더 좋았다. 퇴근 무렵 생전 그런 적 없던 한 선배의 느닷없는 커피 제안과 오랜 연애 끝에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친구의 이야기까지, 그날따라 평소와 다름없이 찾아오는 일상의 작은 이벤트들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물론, 어떻게 알고 축하 인사와 선물을 건네는 지인들도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 먼저였고,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놀라움이 그다음이었다. 왜 메신저에 생일 알림이 뜨지 않는 거냐며 의문을 표하는 친구들의 핀잔에는 좀처럼 웃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정확히 그 타이밍에 ‘이들이 진정한 내 사람들이구나!’ 하는 소름 끼치는 생각이 스쳐갔다. 축하받고 싶지 않다며 알림까지 꺼놓고는 축하해준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구분하고 우위에 두는 듯한 모순적인 감정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 감정은 결혼식이 끝난 뒤 축의금의 숫자가 머리에서 계속 맴돈다는 친구들을 속물이라며 비난하던 내 모습과 완벽하게 교차됐다.
무언가를 받아 놓고, 정작 상대방의 생일은 챙기지 못하는 관계들에 자꾸만 맞닥뜨리면서 좌절감이 늘었다. 생일이란 단어에 좌절과 실망 같은 단어가 가당키나 한가. 그러다 문득 발칙한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일을 숨겨야겠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도 난 계속 모르게 할래
퇴근 후, 여자 친구와 하는 저녁 식사가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느껴졌다. 매년 생일날이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축하와 선물에 몸 둘 바를 모르며 감사함과 민망함을 표하느라 바빴던 감정의 소모가 없었던 때문일까. 하필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월요일이 생일이라며 장난스럽게 타박하는 여자 친구의 농담마저도 애정이 가득 느껴졌다. 가장 조용했지만, 요 근래 생일에서는 느껴본 적 없던 안정감 넘치는 하루가 분명했다.
언젠가부터 생일이 시험날처럼 느껴지곤 한다. 시계가 자정을 막 넘어가는 순간부터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꼭 온종일 고단한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랄까. 그날은 내가 지난 1년간 얼마나 잘 살았는가를 초조한 마음으로 평가받는 날이고, 원치 않음에도 그 결과는 잔인하게 실시간으로 계속 전해진다. 그렇게 내가 받은 메시지와 선물의 수는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로 차곡차곡 쌓여 영원히 나를 괴롭힐 것만 같다. 뭐가 이렇게 나를 수동적이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기분 좋아야 할 생일날이 왜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은 것처럼 타인에게 평가받는 기분으로 느껴지는 걸까.
계속해서 생일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올해 생일에서 느꼈던 낯설지만 평화로운 감정을 잊지 않고 발전시키고 싶다. 대신 조금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하루를 만들어나가 보려 한다. 예를 들면, 그 하루라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네고 누군가의 부탁에도 인상 찌푸리지 않고 친절한 웃음을 짓는 그런 사소한 것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평소에 하지 못했던 그런 일들이다. 그렇게 생일날 스스로 만들어가는 하루하루들이 모여 더욱 커다란 삶의 행복을 만들어줄 것만 같은 확신이 생겼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에게 내 하루를 맡겨두고 싶지는 않다. 그날만큼은 정말 내가 행복해야 하는 날이니까.
날아라통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