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의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엔(n)번방’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갓갓’(닉네임)을 붙잡았다. 고담방을 운영하며 엔번방 웹주소를 퍼뜨린 ‘와치맨’ 전아무개(38)씨, 엔번방의 수법을 모방해 돈까지 번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씨에 이어 갓갓까지, 3명의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주요 피의자가 반년 만에 모두 검거된 것이다. 주요 피의자 3인방이 모두 붙잡힌 만큼 앞으로 경찰은 이들의 공범과 회원 등을 검거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전망이다.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텔레그램 엔번방 운영자인 ㄱ(24·닉네임 갓갓)씨에 대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수 여성의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하고, 텔레그램 대화방에 배포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1일 밝혔다. 엔번방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갓갓의 메신저 아이디 등을 특정해 수사를 벌이다 지난 9일 ㄱ씨를 소환해 조사하던 중 자신이 ‘갓갓’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이후 ㄱ씨를 긴급체포하고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북청은 이번주 안에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ㄱ씨의 신상공개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다.
‘갓갓’은 엔번방 사건의 시초로 꼽힌다. 이 때문에 엔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고 ‘박사’ 조씨가 붙잡힌 뒤 경찰청은 관할청인 경북청에 베테랑 사이버수사관을 투입하는 등 ‘갓갓 검거’를 최우선순위에 두고 수사를 전개해왔다. 지난 4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갓갓 검거를 위해 상당한 단서를 확보했다. 이 단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입증하기 위한 증거 자료를 선별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갓갓은 지난해 2월 텔레그램 비밀방 8개를 만들고 1번부터 8번까지 각각 이름을 따로 설정해, 방마다 특징을 달리한 피해 여성들의 신상정보와 성착취물을 올렸다. 방 하나에 피해자 3~4명의 성착취 영상이 수백개씩 올라왔다. 에스엔에스(SNS) 등에서 여성들의 신상정보를 털고 협박해 성착취물 촬영을 강요하고 텔레그램에 유포하는 범행 수법을 공식화한 것도 갓갓이다. 와치맨 전씨는 고담방을 운영하며 엔번방의 웹주소를 실시간으로 공유했고, 공유된 엔번방의 성착취물들은 또다른 ‘카피방’을 통해 재유포됐다. 전씨는 지난해 9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지난 3월 검거돼 재판을 받고 있는 조주빈씨 역시 엔번방의 범행 방식을 모방해 박사방을 만들었다. 다만 그는 암호화폐를 통해 유료회원방을 별도로 만드는 등 갓갓의 범행 방식을 지능화했다.
경찰은 갓갓의 조력자들과 박사방 유료회원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는 한편 이들의 조력이나 공모 관계도 수사할 방침이다. 치밀하게 신원을 숨겨온 갓갓마저 검거된 만큼 상대적으로 보안에 신경을 쓰지 못했을 회원들의 검거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박사방 유료회원들을 특정하는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갓갓’과 조주빈이 서로 연락해 박사방을 만들었다거나 공모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북청의 수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공유해 둘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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