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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개근상 때문에 아파도 참는 게 과연 성실일까요?

등록 2020-04-25 17:57수정 2020-04-25 18:00

[토요판] 이런 홀로
아프기 전에 좀 쉴게요

코로나 위협 누구나 같은데
싱글은 휴업 신청에서 후순위
용기 내야 가능했던 재택근무

안전 도모를 몸 사리기로 오해
아픈 사람에게 불성실 낙인까지
아직도 이 사회는 개근과 만근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주 아픈 사람은 불성실하고, 조금 아파도 병원에 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지금 어른이 된 사람들이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없이 20세기 말을 살아온 덕분일지도. 게티이미지뱅크
아직도 이 사회는 개근과 만근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주 아픈 사람은 불성실하고, 조금 아파도 병원에 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지금 어른이 된 사람들이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없이 20세기 말을 살아온 덕분일지도. 게티이미지뱅크

지하철역 앞에 두어 달 보이지 않던 전단지 알바들이 다시 나타났다. 요가, 피티(PT), 필라테스처럼 그동안 운영하기 어려웠던 체육시설들의 광고지다. 며칠 전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한다는 발표가 났던 게 이렇게 곧바로 퇴근길 풍경으로 다급하게 와닿는다. 그런데 길에 서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죄다 우리 엄마뻘 되는 아주머니들뿐이었다. 마스크도 쓰고 장갑도 끼고 있지만 그래도 보는 마음이 조금 조마조마했다. 코로나19 전엔 전단지 알바들 중에 젊은 사람도 많았던 것 같은데, 괜히 마음이 켕기듯 아팠다.

삶이 평온할 때는 먼 곳을 내다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눈에 새롭게 들어오는 때는 부끄럽지만 나 역시 하나라도 크고 작은 괴로움을 안고 가고 있을 때다. 가게 문을 열고, 길 위로 나와 일하는 사람들도 바이러스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결혼한 사람 먼저 쉬어라?

​지난달부터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쉰다. 지난달에는 우리 회사도 전 직원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재택근무나 휴업을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재택근무를 할지 휴업을 할지는 부서장 재량으로 정하는 것이었는데, 우리 부장님은 희망자에 한해 휴업하는 것을 택했다. 재택근무는 월급에 변동이 없지만, 휴업을 하게 되면 쉬는 날은 임금이 70%만 나오고 주휴수당 같은 덤삯도 없어진다. 쉬지 말라는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지침에는 없지만 윗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있는 미묘한 휴업 신청 자격 제한이었다.

“아직 결혼 안 하신 분들은 그렇게까지 불가피한 상황은 없을 거잖아요.” 설명회를 소집한 인사 담당자는 현재까지 휴업 신청을 한 사람들은 어린 자녀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몇 차례나 강조했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직원들은 휴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코로나19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사람들의 경계심이 높아졌을 때였다. 이건 육아돌봄휴가가 아니라 사무실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실시하는 것인데, 기준을 거기에 두는 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혼자 살면 코로나 안 걸리나?” 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팀 동료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날 오후 나는 회사 복도를 두 바퀴 돌고 사무실로 돌아와, 휴업을 신청했다. 막상 휴업을 신청하자 승인 과정은 순조로웠다. 공공기관이라 사기업 같은 심각한 타격은 없었지만, 우리도 상반기에 예정된 굵직굵직한 사업들은 대부분 중단이나 연기가 된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무표가 확정되고서야 알았지만, 처음 휴업을 신청한 사람 중 자녀가 없는 직원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세 명이 더 휴업을 신청했다.

협업하는 다른 부서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우리 부서를 빼고는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는 모양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부서 전체가 순번을 정하느냐, 희망자만 하느냐 정도였다. 휴업 신청을 받는 방식을 고른 부서는 우리 부서뿐이라는 걸 알고 보니, 부장님이 재택근무도 휴업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 없음’이란 말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점심이 다 꺼진 속에 커피를 채우고 빙빙 복도를 돌고서야 결정을 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든 키우지 않든, 이미 바이러스는 전 세계의 모두에게 불가피한 위협이 되어 있었다. 윗사람들의 인품이나 상식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사실은 누군가는 감염을 피할 수 있고 누군가는 피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처음 겪어보는 일을 처리하면서 그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 할 뿐이다. 태풍이 와도 눈보라가 쳐도 출근하고, 윗사람이 퇴근하기 전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으면 성실하다고 인정받고 안정된 고용과 승진으로 보상받는 것. 아마 학창 시절엔 열이 펄펄 나고 시름시름 앓는 날에도 이를 악물고 등교를 했을 그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나는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개근상을 받았던 많은 아이들은 사실 쉬고 싶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해주기 어려웠던 것 같다. 아픈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돌봄의 여력이 없었기에, 어른들이 바쁜 낮에는 아픈 아이들도 어떻게든 일과 안에 욱여넣어 놓아야 했던 것이다. 운 좋으면 양호실에 누워, 운 나쁘면 책상 위에 엎드려 버틴 아이들을 칭찬과 상으로 달래가며 키우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값싼 예방주사들로 대부분의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믿었던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개근상이란 이름의 강요된 성실

그 결과가 이렇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근과 만근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성실함의 실적을 요구하는 사회는, 안전의 도모를 몸 사림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자주 아픈 사람은 불성실하다고, 조금 아파도 병원에 가는 사람은 겁쟁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뉴스에서 확진자들의 동선을 보며 ‘몸도 아프면서 왜 저리 부지런히 돌아다닌 거야?’ 하고 탄식했지만,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어땠을까. 약으로 미열과 기침을 누르며 사람들 속으로 나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누군가 정해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새로운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이 사회가 아직 잘 돌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시스템이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싶어서, 그 증거를 꽉 찬 지하철과 꽉 찬 사무실에서 발견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텅 비는 것이 정상일 때조차 말이다. 그럴 때 혼자 사는 성인들은 규범과 무언의 압력에 의해 손쉽게 맨 앞으로 내세워지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먼저 내몰릴 뿐, 집단이 흐트러지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은 가족을 부양하고 봉양하는 이들까지 모두 차고 견디고 버텨야 하는 선으로 내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난 몇 달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렇게 물리적으로 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을 용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전염병이 퍼져가는 과정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멀어진 개인 간의 거리와 반비례해, 촘촘하게 채워져가는 것들도 있었다. 내가 나를, 또 나와 사회가 서로 지키기 위해 주저 없이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은 낙관의 감각이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야 카레를 많이 먹어. 카레에 있는 강황이 면역에 좋다네. 그리고 아프면 푹 쉬어야 해.”

겨울로 돌아간 것처럼 바람살이 매운 퇴근길,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열어보다 시큰하게 웃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가느다란 봄비도 피하며 걷는다.

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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