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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준법감시위 만들었으니 감형? ‘개인범죄’ 저지른 이재용에게 적용될까

등록 2020-04-02 06:59수정 2020-04-02 07:47

이 부회장, 재판부 제출 의견서 살펴보니
기피신청 판단 한 달째, 재판 잠정 중단
의견서엔 “준법감시위 양형사유 고려돼야”

미 연방양형기준 8장 기업에 적용되는 제도
국내 사례 들며 ‘개인에도 적용되고 있다”

이수화학·벤츠코리아 사건은 기업범죄 일종
법조계 “이 부회장 사건, 개인범죄 가까워”

정몽구 회장 사건 논란많던 항소심도
“경영 승계작업은 비난의 여지가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준법감시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감형 사유로 고려돼야 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말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에 의견서를 내 이렇게 주장했다. 국정농단 특검이 낸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재판이 잠정 중단되면서 이를 재판에서 직접 주장할 기회는 갖지 못했지만, 이 부회장의 감형 주장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 두 건에 고스란히 담겼다. 개인범죄냐, 기업범죄냐. 이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 엇갈린 시선에서 비롯됐다는 법조계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공여 사건은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고위 임원 5명이 기소된 사건이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지난해 10월 첫 재판에서 언급한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은 ‘피고인’이 ‘기업’일 때 적용되는 제도다. 이름 자체가 ‘조직체에 대한 선고(SENTENCING OF ORGANIZATIONS)’다. 피고인이 기업인 경우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설치해 재발 방지에 힘썼을 때, 기업에 물리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지, 이 부회장과 같이 회사 자금을 횡령한 경영자 개인에 적용되는 제도가 아니다.

이때문에 법조계에서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왜 미국에서 기업에 적용하는 양형 기준을 이 부회장 재판에 언급했는지 해석이 분분하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맺고 뇌물을 건넨 주체가 이 부회장개인이 아닌 ‘삼성전자’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 사건을 ‘기업범죄’로 보고 준법감시제도를 ‘처방전’으로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검은 특히 재판부가 미국 연방양형기준 8장의 ‘프로베이션’(보호관찰)을 염두에 뒀다고 본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도 의견서에서 미국 연방양형기준 8장이 기업에 적용되는 제도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 부회장 쪽은 ‘준법감시제도가 피고인이 기업이 아닌 임직원 개인인 경우에도 양형사유로 고려되고 있다’는 주장을 꺼내들었다. ‘준법감시제도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업이 도입·운영하지만, 실질적인 차원에서 임직원의 의지나 결단이 있어야만 효과적인 준법감시제도가 구축되고 운영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 쪽은 그 예시로 △정몽구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배출가스 조작사건 △이수화학의 가스방출 사건 △담철곤 오리온 회장 사건 등 4가지 사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쪽이 내세운 4가지 사례도 이 부회장 사례와는 양태와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8년 12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김아무개 인증팀 부장은 정부 당국의 자동차 배출가스 인증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혐의(관세법 위반 등)로 각각 벌금형과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수화학은 유독물질인 불산을 공기중으로 유출시킨 혐의(유해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으로 공장장과 함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재발 방지에 힘쓰고 있다”는 점이 피고인 개인의 양형 사유로 참작됐다.

두 사건이 기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했다면, 이 부회장의 범죄는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개인적 사유가 주된 이유가 됐다. 이때문에 이 부회장 사건은 기업 범죄보다 개인 범죄에 가깝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해 8월 국정농단의 핵심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씨 대법원 판결에서도 경영권 승계작업이 그대로 인정되기도 했다. 김종보 변호사(법무법인 휴먼)는 “기업 범죄가 법률용어는 아니지만 통상 기업 운용 과정에서 비롯되는 독과점 및 담합, 환경 범죄, 행정 위반 사건 등을 말한다. 이 부회장 사건은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 작업이 가장 뚜렷한 범행 동기이기 때문에 개인범죄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더군다나 이 부회장 사건에서 삼성전자는 오히려 부당하게 자금을 유출당한 피해자에 해당한다. 준법감시제도로 삼성그룹의 체질을 바꿔서 동종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삼성이 피고인일 경우 가능할 수 있지만, 이 부회장 개인이 피고인일 때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기업범죄와 개인범죄를 무 자르듯 나누기 어렵고, 기업범죄와 개인범죄가 혼재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이 그렇다. 2008년 정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사회공헌 약속의 이행과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 및 기고를 조건으로 하는 사회봉사명령을 내리면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논란이 됐지만, 그런 재판부조차 재벌 2세로의 승계 작업은 비난 받을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그룹의 경영권을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에게 승계하기 위해 기아자동차 계열사의 구조조정 과정을 활용해 정 수석부회장에게 부당 이익을 안겨주고 현대차에게는 손해를 입힌 데 대해, 재판부는 “그 자체로 비난가능성이 크다”며 “사건 당시 이미 다른 재벌그룹의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제3자 임의배정 방법 등을 통한 부의 불법적·편법적 승계에 관한 사회적 논란이 있던 상황에서 범행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의 여지가 적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 쪽이 현대차 사례를 인용해 의견서에 밝힌 “자금지출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투명경영을 위한 부외자금 관행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는 대목은 비자금 형성 혐의와 관련된 양형 인자의 일부다. 이 부회장 쪽이 본인에게 유리한 대목을 인용한 것인데, 실제 재판에서는 이 부회장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승계작업은 죄질이 나쁘다며 부정적 양형인자로 반영된 셈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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