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안정적인 직장을 걷어차는 멍청한 짓을 왜 하는지, 그들은 무척이나 궁금했을 거다. 그렇게 그들은 나를 붙잡아두고 또 설득하는 대신 의문만 표할 뿐이었고 모순적이지만 그럴수록 내 선택에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회사를 관두고 싶어.” 멀쩡한 회사를 멀쩡히 다니다가 느닷없이 폭탄을 투하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도 평온한 표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내 모습에 그들의 표정은 짐짓 복잡해 보였다. 누군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또 누군가는 애써 대수롭지 않은 농담 취급을 하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러고는 마치 짠 것처럼 “왜?”라는 의문을 한 방향으로 고르게 던졌다.
그러니까 그 의문은 ‘(도대체) 왜’라는 뜻일 거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보장된 길은 아니지만 누구나 알 만한 회사를 그만두겠다니. 그것도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안정적인 직장을 걷어차는 멍청한 짓을 왜 하는지, 그들은 무척이나 궁금했을 거다. 그렇게 그들은 나를 붙잡아두고 또 설득하는 대신 의문만 표할 뿐이었고 모순적이지만 그럴수록 내 선택에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구조조정 지라시가 돌고, 임금 삭감에 무급휴직 같은 흉흉한 이야기가 나오는 몇 달 사이. 바이러스는 온 세상을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오랜 기간 준비한 시험이 연기되고,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던 친구는 문을 닫은 학원 탓에
생계가 막막해졌다. 급기야는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받아 한순간에 백수가 된 친구도 생겼다. 모두가 마음 졸이며 일상의 안정감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조금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감사하게도 내 직장은 월급을 줄이거나 사직을 권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던 출근길 발걸음. 회사 가기가 영 끌리지 않았고 얼굴에 웃음을 잃어가는 내 모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많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안정감 대신 자꾸만 도전을 선택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 요즘 것들은 인내와 끈기가 부족하다고 ‘라떼는’ 노래를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의 시선으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지만 정작 당사자는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굳이 나의 상황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미 탈출했거나 탈출하려는 이야기
오랜만에 내게 안부를 물어온 후배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대기업에 들어가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쉽사리 축하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후배는 첫 직장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3년 만에 온갖 삶의 열정을 가열하게 소진하고 돌연 세계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나 다시 만난 후배의 눈빛은 예전에 내가 알던 그 모습처럼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무척 반가운 마음에, 나마저도 온갖 의욕이 샘솟는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후배는 한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정리도 되어 있지 않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조금씩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그 일에 불안할 정도로 설레 보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진행하던 사업이 난관에 부딪혔고 투자가 막혔다. 후배는 마구 발버둥 쳤음에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족과 지인들의 성화가 이어졌다. 꼭 실패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처럼. 야속했지만 후배는 현실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다시 다른 대기업에 들어갔다.
한 친구는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느지막이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가 의아해한 선택이긴 했다. 그래도 친구는 개그맨이 되기 위한 길을 가고자 어렵게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학교라는 소속을 벗어나자마자 주변에서는 걱정과 우려를 가장한 온갖 오지랖이 이어졌다. 큰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회사생활 하며 월급쟁이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의 소중함을 자꾸만 들이밀었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 연기를 배우고 대학로 공연장을 오가는 시간들을 사람들은 좀처럼 인정해주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의 인정을 바랐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친구는 조금씩 ‘멘탈’이 흔들리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러다가 계획에도 없던 대학원 진학을 도망치듯 선택했고, 신기하게도 주변의 관심은 잠잠해졌다. 시간이 꽤 흘러 친구는 당시의 감정을 내게 들려줬다. 스스로 꿈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뚜렷하다 믿었는데 놀랍도록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이 놀랍고 무서웠다는 이야기였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던지는 무게감을 본인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조기졸업을 확정했으나,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방문한 학과 사무실에서였다. 한 교직원은 내게 “조기졸업에 수석졸업까지 하는 친구가 취업이 안되는 거냐”며 놀랍고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인생의 공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시선에 민망하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얼굴이 화끈거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겨를도 없이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내 분노와 수치심이 밀려왔지만 그때는 딱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시간이 꽤 흘러, 친구는 개그맨 도전을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사이 나는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와 다른 삶을 찾고자 아등바등거리고 있다. 그때 그 교직원이 나와 내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된다면 여전히 참 불쌍한 인생이라며 인생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계속해서 잘못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설렘 없는 안정감은 허구
앞날을 조금도 알 수 없는 때, 안정감은 여전히 일자리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안정된 일자리의 상징인 공무원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책상에 앉아 소중한 시간을 쏟는다. 하지만 안정감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을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밖으로 내모는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예전엔 ‘국영수 중심으로 열공해야 좋은 대학 간다’는 식으로 인생 경로에 대해 누군가 내려놓은 답이 있었다. 직장으로 따지면 갑자기 망하지 않고, 월급 끊길 걱정이 없으며, 사고 치지 않으면 잘리지 않는 그런 회사에 취업 3종 세트를 준비해 입사하는 걸 말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예를 들어,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는 걸 목격했고, 철밥통 공기업이 한순간에 민영화되어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광경을 지켜봤다. 하물며 대공황에 비견되는 경제 위기가 시작됐다는 전망이 나오는 요즘은 코로나19 시대 아닌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자리도 한순간에 고꾸라지는 게 현실이다.
결국 중요한 건 설렘이다. 나를 가슴 뛰게 해 이른 아침 출근하게 만드는 설렘이야말로 직장에서 가장 안정감 있게 버티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 지인 중 한명은 맞지 않는 전공에 힘들어하다 부모님 몰래 대학을 자퇴했다. 가족들과 오랜 갈등을 겪으며 요리를 배우다가 얼마 전 마침내 식당을 열었다. 학창 시절부터 모두가 아는 사고뭉치였고 고졸에 머무르기를 스스로 선택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떳떳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고요한 느낌.’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안정감’에 대한 설명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단지 월급이 안 끊겼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당장 망하지 않은 회사란 이유만으로 육체와 정신이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삶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을 터. 설렘 없는 안정감이란 허구에 불과하다.
날아라 통닭
▶ 한국의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삽니다. 굳이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 주변엔 결혼적령기(라고 알려진)를 맞았거나 이미 지나버린 젊은이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또한 당신이기도 하고요. 그런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혼자서도 잘 사는 홀로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