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도 지내지 않고 북적대는 친척들도 없는 설은, 텅 빈 서울 시내만큼이나 이상하게 휑한 행사처럼 느껴졌다. 원래부터 비어 있었는데 북적대는 형식이 없어지고 나니 비로소 그 진실이 드러난 기분이었다고 할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가족들 모두 허둥대고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크리스마스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반팔을 입고 보냈다. 아무리 여름의 크리스마스라지만 내가 간 오키나와 북부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정말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24일 밤에 술을 살 겸 산책을 나갔다가, 중년의 동네 사람 10여명이 모여 (일본어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 이상한 풍경을 마주한 것이 이번 크리스마스의 가장 크리스마스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로등도 거의 없는 캄캄한 골목의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 엉거주춤 서서, 각자 손에 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정성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예전엔 나와 상관없는 예수의 탄생 같은 것을 기념하는 호들갑 자체를 눈 흘기고 보는 비뚤어진 마음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무슨 날을 기념하는 것이 그냥 실용적 행위일 수도 있다는 걸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러니까 인류의 세시풍속 같은 게 실은 지루하고 단절 없는 인간 삶에 하나의 마디를 만드는 일일 뿐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크리스마스에 파티를 하고 트리를 만들고 카드를 쓰고 선물 교환을 하는 식의 일에서는 멀어진 채 살고 있다.
물론 내 마음 한편에는 따스한 경험들이 자리하고 있다. 20대 때 어느 글 쓰는 모임에 한창 나가던 시절에는 크리스마스나 새해에 카드도 주고받고, 누군가의 집에 모여 1만원 이내의 선물을 교환하거나 케이크를 나눠 먹는 일도 더러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나도 기꺼이 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간소하지만 선물을 고르고 카드의 문구를 쓰는 일은 주변의 감사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좀 더 생각하게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런 문화를 즐기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주변의 친한 친구들도 모두 결혼을 하고 조금씩 멀어진 뒤로는 굳이 특별한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세배, 윷놀이로 채워진 휑한 행사들
굳이 마음을 적고 사랑을 나누고픈 지인들이 없어서? 감사를 전할 만한 스승이랄 게 없어서? 아니면 진심으로 그런 문화를 즐기는 유의 친구 그룹이 내게 없어서인가? 그런 말을 하는 내게 선배 ㄱ은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면서 살아”라며 핀잔을 줬다. “자꾸 해보면 그 마음이 너한테도 돌아오고, 그러면 또 그게 좋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잖아.” 하지만 내가 보기엔 ㄱ 자신도 그런 일을 잘하는 축은 아니었다. 그는 내게 메리 크리스마스 문자나 생일 축하 메시지 한번 보낸 적이 없었다.
중년쯤 이르게 되면, 특히 ‘정상 가족’의 트랙에서 비켜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이 혼자인 채로 인생의 한복판에 이르면, 삶의 분주한 형식들이 지워지는 수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한국인의 보편 생애주기에서 학업-취업의 단계는 지났고 결혼-출산의 단계로는 가지 않았는데, 일에서 약간은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 그 상태가 되면 많은 것을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 남편과 시집 눈치 보느라, 아이 때문에, 며느리 역할 때문에 의례적으로 뭘 할 필요도 없고, 그것에 맞서기 위해 투쟁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오로지 맨몸으로 세시풍속과 절기들을 지나다 보면, 오히려 우리 삶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분주한 의례들이 지워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설에 부모님 댁에 다녀오면서 이제야말로 명절에 부모님 댁을 찾는 일이 껍데기뿐인 의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명절에 큰집에 가지 않게 되었다. 큰집 어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처음 맞는 설인 올해부터는 부모님을 포함해 가족 모두 명실공히 큰집에 가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 친족들이 얽히지 않고, 부모님, 나, 그리고 결혼한 여동생네 가족만 모이는 첫 설이었던 셈이다.
차례도 지내지 않고 북적대는 친척들도 없는 설은, 텅 빈 서울 시내만큼이나 이상하게 휑한 행사처럼 느껴졌다. 원래부터 비어 있었는데 북적대는 형식이 없어지고 나니 비로소 그 진실이 드러난 기분이었다고 할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가족들 모두 허둥대고 있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준비한 듯한 설음식을 차려놓았다. 가족들은 함께 식탁에 모여 앉아 준비된 나물, 전, 잡채,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함께 위령미사를 보러 성당에 다녀온다.
이윽고 설날의 가장 큰 세리머니인 세배 시간, 나는 부모님께 봉투를 드리고 부모님은 나에게 봉투를 내민다. 새해에 하는 일 모두 잘되고 운운하는 덕담이 몇마디 오고 간다. 나는 뭔가 진이 빠진 채 웃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우리가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을 그들의 시간을 생각한다.
윷놀이 타임이 이어지고 우리는 팀을 나누어 3전2선승제 게임을 3차전까지 이어간다. 내일 점심 내기라는데 오늘 저녁 전에 집에 돌아갈 예정인 나로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내기다. 윷판이 돌고 응원과 탄식의 고성이 지나간다. 술을 걸친 아빠는 잠시 낮잠을 자러 들어간다. 나는 동생네 식구와 함께 집 근처 천변에 산책을 나간다. 돌아오는 길, 해가 기울고 조카는 까무룩 잠들어 있다. 나는 동생과 엄마와 티브이를 보며 약간의 수다를 떨다가, 엄마가 싸준 음식들을 싸들고 한적하고 쓸쓸한 서울 시내 거리를 지나 내 집으로 돌아온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쿠키 몇개에
설이란 뭘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난 저녁 엄마와의 루미큐브 게임을 떠올렸다. 평소보다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엄마는 갑자기 보드게임을 하자면서 루미큐브 게임을 들고 왔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은 세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엄마와 나는 게임에 필요한 말만 할 뿐 각자의 타일을 내려놓고 조합하는 데만 열중했다. 마치 이왕 마주 앉았으니 시간을 보내는 데는 이만한 형식이 없다는 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게임의 룰과 이 게임을 앞에 둔 자에게 걸맞은 대화와 태도뿐이라는 듯이. 게임이 끝난 뒤 엄마와 나는 진이 빠져 말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설날의 세배에는 ‘새해를 맞이해 심신을 일신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진심이 문제였을까? 집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나는 문득 크리스마스 날 오키나와의 어느 선술집 주인이 건넨 작은 선물을 기억해냈다. 일본어가 서툰 나는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듯한 그 식당의 메뉴판을 읽을 수 없었고, 주인은 영어를 전혀 못 했다. 한참 파파고와 씨름하던 나는 다 포기하고 그냥 “맛있는 것 추천해주세요”를 파파고 번역기에 대고 말했다. 다행히 음식은 정성스러웠고 아주 맛있었다.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잠시 뒷문을 통해 어디론가 나갔던 주인이 산타클로스가 그려진 포장지에 담긴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나는 술집을 나와 어두운 골목에 서서 포장지에 핸드폰 불빛을 비춰보았다. 거기에는 서툰 영어 글씨로 ‘메리 크리스마스, 해브 어 굿 트립!’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건 그냥 쿠키 몇개일 뿐이었는데. 나는 차라리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카드를 쓰면 어땠을까, 돈봉투와 회사에서 준 설 선물세트가 아니라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하면 어땠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잠시 잠깐 했다.
다이나믹 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