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월 11일 낮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참모들과 함께 산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은 9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검찰청 참모 전원을 포함해 검사장급 이상 ‘윤석열 사단’이 대거 좌천된 8일 인사 직후라 여론의 관심은 그의 거취에 쏠렸지만, 일각에서 예상한 항의성 사퇴는 없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이날 통화에서 “인사는 인사고, 국민에게 임명장을 받은 공직자로서 할 일을 계속한다는 게 총장의 생각”이라며 “정권이 가장 바라는 게 뭔지 총장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윤 총장은 이미 정권의 ‘보복성 인사’를 예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와 각별한 관계인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는 “분위기가 하도 흉흉해 며칠 전 통화할 때 ‘지금 거취를 결정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했더니, 윤 총장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의지가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윤 총장의 이런 태도는 현재 진행 중인 수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 유재수 감찰무마 수사를 동시에 벌이며 청와대와 마찰을 빚어왔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에 대한 정권 차원의 징벌”이라며 “검찰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에 맞서 수사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 총장밖에 없다”고 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 때 채동욱 검찰총장이 ‘제거’된 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왜곡·축소되는 과정을 직접 겪은 윤 총장으로서는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 총장이 이번 인사로 큰 난관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다. 국정농단 특검부터 적폐 수사까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참모들을 대부분 잃었다.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23기)이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이성윤 검사장이 부임한다. 설 전으로 예상되는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의 1·2·3차장, 반부패부장들이 대거 교체될 것으로 보여 “손(검사장)에 이어 발(차장·부장)도 잘려나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지난해 7월 취임 뒤 줄곧 유지돼온 윤 총장의 ‘친정·직할 체제’가 해체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최대한 동원해 청와대를 향한 수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 목록’에 다른 사건이 추가될 수도 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정권에 인사권이 있다면, 총장에겐 수사권이 있다”고 했다. 수사지휘권을 가진 윤 총장은 특별수사단 또는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거나 사건 재배당(이첩·이송) 등 광범위한 지시를 할 수 있다. 또 각 검찰청 단위의 부서 구성 등 업무 분장에 대한 지시도 가능하다. 서울중앙지검장이 ‘실세’라도 총장에게 수사 진행 상황을 수시로 보고하고 지시에 따라야 한다.
윤 총장이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검심’(검사들의 마음가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를 맡은 실무 검사들의 태도가 현재 진행중인 수사의 향방은 물론 윤 총장의 미래까지도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가혹한 징벌 인사가 계속되면 그동안 ‘윤 총장식 수사’를 달가워하지 않던 검사들마저 뭉칠 수도 있고, 반대로 인사에 대한 공포가 퍼져 일선 검사들의 수사 의지가 꺾일 수도 있다”며 “관건은 수사 검사들의 마음”이라고 전망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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