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정 없어 보이더라도 어쩌면 칼 같은 더치페이가 관계의 오랜 지속을 보장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적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한쪽이 불편해지고, 또 다른 상대방은 영문을 모른 채 거리두기를 당하는 일은 애초에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받는 것과 주는 것, 당신은 무엇이 더 익숙한가. 사실 그 어느 쪽도 마음 편하긴 쉽지 않다. 받는 것은 상대방에게 꼭 빚을 진 느낌이고, 주는 것은 때때로 생색이라는 거들먹거림의 형태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고로 두가지 모두 서로에게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균형감인데 이를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나는 받는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는 유형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웬만하면 밥을 사려고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계산에 실패하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커피라도 꼭 사고 누구 하나 건드리지도 않을 빵을 잔뜩 주문해놓고 남은 건 손에라도 들려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냥 얻어먹고만 마는 하루는 견디기가 어렵다. 마치 결벽증과 강박증이 동시에 찾아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다 보니 관계에 상당한 불편함이 따른다. 내 마음과 주머니에 여유가 없으면 상대방의 순수한 제안에도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그걸 배려라고 포장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그중 몇번은 상대방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계속해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불만을 표출하고 마땅히 멀어지게 마련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수습하려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나 또한 그런 임시방편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밥 사주세요” 인간관계 필수어?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나는, “선배, 밥 사주세요”라는 소리를 유독 하지 못했다. 주변 친구들은 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배들과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나를 타일렀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그 대사는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몇번 친구들을 따라나선 적은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몇살 차이도 나지 않는 그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상황은 뭔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들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인 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1년 후 신입생들이 들어오면서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했다. “선배, 밥 사주세요” 하는 후배들의 곰살맞은 인사였다. 그들도 1년 전 나처럼 비슷한 조언들을 받았을 거다. 그렇게 해야 선배랑 친해질 수 있을 거고, 내키지 않더라도 그렇게 먼저 다가가는 게 후배의 도리(?)라는 요상한 가르침들 말이다. 사실상 처음 본 나를 향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자고 이야기하는 후배들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런 대부분의 후배와 열심히 밥을 먹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밥을 사야 하는 상황이 대학생에게는 때로는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맛있고 근사한 걸 사주지 못할 때는 실망한 후배들의 눈빛이 바코드처럼 정확히 읽히기도 했다. 서로에게 민망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고 그 시점은 관계의 결정적 계기가 되어 대부분 흐지부지되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1년 전, 선배들에게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상황에 비해서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내가 그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회사에 들어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큰 위기가 찾아왔다. 신입사원을 향한 상사들의 애정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컸다. 점심도 저녁도 함께 밥을 먹자 했다. 대학생 때처럼 그냥 안 보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아웃사이더처럼 마냥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 때와는 뭔가 다른 기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얻어먹기만 할 수는 없었다. 한번은 진심으로 거칠게 항의(?)를 했다. 계속 얻어먹기만 하면 편하게 보기 힘들 것 같다는 투로 말이다. 그렇게 상사들과의 식사 자리가 뜸해지자 몇몇 분들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늦은 시간 연락해 어떻게 먼저 연락 한번 없냐며 섭섭함을 드러냄과 함께 나의 ‘싸가지’를 무겁게 힐난했다. 물론 그럴수록 그들과 나의 관계는 점차 어색하게 멀어졌다.
그런 탓에 내 관계는 무척이나 좁아졌고 이런 나를 이해하는 선후배와 친구들만 남게 됐다. 여기 남은 사람들 간에는 굳건한 동맹의식 같은 게 있다. 나랑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할까. 물론 서로가 그걸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동의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다. 암묵적으로 그 과정을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익숙해졌을 따름이다. 대표적 한명이 6년째 만나는 여자친구다. 시작한 사랑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도 문제는 결국 돈이었는데, 우리는 6년째 연애하며 돈으로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며 고민하고 또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데이트 통장의 순기능
여자친구는 받는 걸 참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친은 어떨 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못 견뎌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촉박하면 그냥 밥만 먹고 헤어질 수도 있을 텐데 기어코 커피를 사서 손에 들려 보냈다. 내가 영화를 예매한 날에는 어떻게든 밥을 사려고 했다. 팝콘이랑 음료를 사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건 얼마 안 되니 그건 그거고 밥을 꼭 사겠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실랑이조차 부질없다 느꼈는지 애초에 카드를 꼭 쥐고 있다가 전광석화처럼 계산대로 뛰어가기도 했다.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은 남녀 불문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생겼다.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정 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여친에게 아직 완전히 편한 사람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돈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했고 연애 초반에 돈 이야기를 꺼내는 거 자체가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커플 통장을 제안했다. 기계적으로 서로의 카드를 주거니 받거니 내밀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매달 정해진 금액을 입금하고 나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커플 통장 쓰자는 남자는 볼 것도 없이 걸러야 한다는 인터넷 여론이 떠올라 살짝 망설여졌지만, 여자친구는 흔쾌히 승낙했다. 예상대로 매번 누군가 계산을 하려고 우왕좌왕하는 일도 없어졌다. 서로의 입장에서 내 돈이 우리 돈이 되면서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한배를 탄 듯한 소속감이 서로에게 공유되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데이트 통장의 순기능이라고나 할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만나면서 누가 얼마를 내느냐 하는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거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과 압박이 매 지점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돈은 당연히 중요하다. 연인뿐 아니라 친구나 사회생활은 물론 때때로 가족 간 관계 유지에도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확신과 오기 같은 게 생겼다. 조금 정 없어 보이더라도 어쩌면 칼 같은 더치페이가 관계의 오랜 지속을 보장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적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한쪽이 불편해지고, 또 다른 상대방은 영문을 모른 채 거리두기를 당하는 일은 애초에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날아라 통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