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게 민주주의예요?”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교정에서 만난 한 중국인 유학생이 홍콩의 한 대학 건물이 불타는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홍콩 시위대는 사람을 때리고 이렇게 기름을 뿌립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포주의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다른 중국인 유학생은 일부 한국 대학생들이 홍콩 시위에 연대하는 데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홍콩 경찰의 시위 강경진압을 바라보는 중국 당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다.

지난 6월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에서 불붙은 홍콩의 민주화운동이 5개월째에 접어든 가운데 국내 대학가에서도 ‘홍-중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최근 홍콩 시위 참가자가 경찰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은 사건 등이 일어나자 한양대 등 국내 대학가에서는 ‘홍콩 시위 연대’를 놓고 한·중 학생들 간에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국내 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내걸고, 중국인 유학생들은 이를 훼손하거나 시위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강력히 규탄하고 있어서다. <한겨레>는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 유학생 10명을 만나 그들이 이처럼 분노하는 이유를 물었다. 홍콩 시위의 핵심을 ‘중국의 영토문제’로,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홍콩 문제는 식민지 역사와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영토 문제는 중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정치적 이슈 중 하나인 만큼 제3국이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홍콩 시위 지지 펼침막이 잇따라 훼손되고 있는 서울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유학생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를 것이다. 펼침막에 쓰인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말에 홍콩이 중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의미가 있어서 중국 사람들이 화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교정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은 의견을 묻자 휴대전화 화면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여줬다. “홍콩의 일은 중국의 일이니 한국인의 참여가 필요 없다. 홍콩의 일은 심각한 사회 안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로 반대하는 것은 폭력사태다.”

다만 중국인 유학생들은 실제로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진압 상황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거나 무심한 듯했다. 연세대에서 만난 유학생은 “홍콩은 지금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때리고 있다. 평화적이지 않기 때문에 홍콩 시위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한·중 학생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던 한양대 교정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은 “대자보를 붙인 한국 학생들은 홍콩 시위의 폭력성을 모르고 ‘민주주의’에만 집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작 이 학생은 홍콩 경찰의 총격으로 시위 참가자가 중상을 입은 사건을 묻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잠시 인터넷을 검색해보더니 “기사에는 총기 오발이라고 나온다. 아무래도 경찰이 먼저 경고했는데 듣지 않아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홍콩 출신 유학생들은 중국인 유학생들과 열린 대화를 간절히 기대했다. 갈등이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양대에 다니는 한 홍콩 출신의 유학생은 “홍콩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독립이 아니라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홍콩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국대의 한 유학생 역시 “중국인들은 우리가 진짜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잘 모른다. 우리가 홍콩의 독립만 원한다고 생각해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학 내 갈등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홍콩 시위에 연대하는 국내 학생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한양대에 설치된 ‘레넌벽’(홍콩 시위에 연대하는 메모를 붙인 벽)에 지난 14일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메모를 붙인 김아무개(21)씨는 “중국 유학생들과 충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 김아무개(23)씨 역시 “무력 충돌이 있었다고 하기에 달려왔다. 홍콩 시위 상황을 기사로 봤는데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며 포스트잇을 붙였다. ‘홍콩의 민주화를 응원합니다. 프리홍콩.’

강재구 김혜윤 서혜미 김윤주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