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리스스토리>의 성룡, <영웅본색>의 장국영, <무간도>의 양조위….한때 홍콩 영화에서 영웅적 주인공으로 등장해왔던 ‘홍콩 경찰’의 인기가 날로 추락하고 있다. 홍콩 경찰이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로 나타난 변화다.
18일 영국 <가디언>은 “한때 존경받았지만 지금은 비판받는 홍콩 경찰이 신규 채용에 실패하고 있다”며 “고참 경찰관들은 떠나고 있고 인센티브 확대만으로는 ‘중국의 잔인한 무기’ 취급을 받는 홍콩 경찰의 공석을 채우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홍콩 경찰은 청년층(15∼29살) 인구가 감소한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홍콩 사회가 2019년 민주화 시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향이 크다는 게 <가디언>의 분석이다.
2019년 10월13일 홍콩 경찰이 반정부 시위 참가자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홍콩 경찰은 지난 3년 동안 신규 채용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다. 신규 경찰관 수가 2019~2020년에는 목표 대비 43.5%, 2021~2022년에는 목표 대비 36%에 그쳤다. 2019년 민주화 시위 이후로 순경직 지원자가 58%나 급감한 탓이다. 지원자가 줄었을 뿐 아니라 사직자도 늘었다. 2022~2023년에 경찰 217명이 관뒀는데 이는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었던 2019~2020년(391명) 이후 최대 규모다.
인력난이 심해지자 홍콩 경찰은 이번 달부터 “채용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며 순경 시험의 키와 몸무게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또 안경이나 렌즈를 낀 채로 시력검사를 치는 것도 허용된다. 홍콩 경찰의 채용 기준은 날로 낮아지고 있다. 이미 홍콩 경찰은 지난해 4월 채용 조건 중 하나였던 ‘최소 7년 연속 홍콩 거주’ 요건을 폐지했다.
정년을 기존 55살에서 60살로 연장하고 직원 복지를 늘리는 등의 채용 캠페인도 소용없다. 20년 경력의 홍콩 경찰이었으나 최근 사임한 케빈 완(가명)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더는 경찰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없었다”며 “경찰은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사명감을 잃어버렸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콩 경찰의 이미지 추락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과도한 무력 진압부터 본격화됐다. 2019년 홍콩 시민들은 홍콩의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에서 재판받도록 허용하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당시 홍콩 경찰은 최루탄에 물대포, 급기야 실탄까지 동원해 시민들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과기대 학생이 경찰의 최루탄을 피하려다 주차장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등 희생자도 나왔다.
2019년 11월16일 홍콩 경찰이 홍콩과기대 근처에서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위의 불길은 사그라들었지만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여전하다. 홍콩의 전직 구의원인 다니엘 궉은 <가디언>에 “경찰에 대한 시민들 인식이 너무 나빠서 입직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독일로 망명한 중국 작가 창핑은 이 분노가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천안문 사태 이후 군대와 인민들 사이에 생긴 균열처럼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홍콩 경찰과 시민 사이에) 상처가 남을 것이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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