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인 사람이 고급 가구나 대형 가전을 사려는 계획을 말하면 어른들은 대부분 그런 건 나중에 혼수로 사라고 한다. 기성세대에게 혼수는 여전히 ‘최대한 좋은, 무조건 새 물건’이다. 우리 엄마도 내 살림살이를 전부 잡동사니라고 부른다. 엄마는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면 지금의 살림을 허물 벗어내듯 싹 버릴 것이라고 굳게 믿고 계실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봄에 오래 써온 찻주전자를 버렸다. 그 뒤로 계절이 두번 바뀌도록, 나는 아직 새것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알록달록 버찌 무늬가 귀엽던 찻주전자는 대학생 때 친한 후배가 선물해준 대표적 ‘천원숍’표 물건이었다. 오랫동안 그걸로 차도 우리고 커피도 내리며 애용을 했다. 여기저기 실금이 가고 찻물이 배어 얼룩도 올랐지만, 그것도 그 나름 멋이겠거니 닦아가며 써왔다. 그랬던 터라, 주둥이가 깨진 주전자를 헝겊으로 감싸 버리면서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오랜만에 살림에 새 물건을 들일 틈이 생겼지만, 빈 자리에 남은 정이 생각보다 깊었다.
스무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방을 얻고, 살림살이라고 할 만한 게 구색을 갖추기까지 못해도 2~3년은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당장 필요한 걸 꾸리는 데도 몇달이 걸렸다. 손톱을 깎으려면 손톱깎이를 사야 한다. 카레를 한번 만들어 먹으려면 감자칼도 사야 한다. 물론 가구부터 커튼 한장, 구둣주걱까지 부모님이 싹 사다 넣어주셨다는 친구들도 더러는 있었다. 찻주전자를 사준 후배도 그런 드문 경우였다. 그러나 ‘당연히 집에 있는 것’으로만 알았던 자잘한 물건들은 결국 살아보며 스스로 채워야 했다.
“엄마가 그런 건 결혼하고 사래요”
이렇게 온통 사야 할 것투성이라 그때마다 하나하나 튼튼하고 좋은 걸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이상은 고급스러운 브랜드였지만 현실은 천원숍과 집 근처 마트. 천원숍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 기웃거리게 되는 건 부모님이 살림 죄다 채워준 그들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뭐가 필요했더라, 우와 이거 그 언니 주면 좋아하겠다, 하면서. 그래도 열심히 사고 채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저녁 한끼 해먹는데 ‘아, 맞다! 그거 없는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드디어 온다.
자, 살림이 어느 정도 차고 나면 문제는 그다음이다. 살림이란 게 한번 들이고 나면 얼마나 오래 생명력을 이어가는지 알아갈 차례이다. 의식적으로 멀쩡한 걸 버리지 않는 한, 밥공기 하나, 젓가락 한벌을 새로 살 기회는 아주 천천히 온다. 이번에 버린 찻주전자도 12년이나 쓴 것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머리를 쪽질 때 쓰시던 30년 된 경대나 참빗 같은 것들도 이렇게 부지중에 햇수를 더해갔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건 10년 써야지, 20년 써야지 정해놓은 게 아니라 쓰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하며 별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던져 넣었던 저렴한 물건들과 나는 여전히 같이 살고 있다. 만약 이렇게 오래 쓸 줄 알았다면 나는 살림을 다르게 꾸렸을지 모른다. 내 취향에도 맞고 더 질이 좋은 물건을 찾을 때까지, 조금 더 천천히 고르고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럼 지금부터라도 좋은 것을 사기 시작하면 되는 게 아닌가? 비혼 아니면 만혼이 흔해지는 사회, 내 삶도 예외 없이 그 사이 어디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살림살이의 중요성을 깨닫고 난 후에도, 나는 막상 좋은 살림살이를 사는 것을 여전히 망설일 때가 많았다. 결혼하기 전엔 좋은 살림을 갖추고 살 필요가 없다는 시선들 때문이다. 이제 막 독립생활을 시작한 회사 동료가 수납장을 구입했다. 월드컵을 방불케 하던 토너먼트식 쇼핑의 최종 승자는 ‘저렴하고 무난한’, 소위 국민수납장으로 불리는 캐비닛이었다. “저는 원목 사고 싶었는데, 엄마가 그런 건 결혼하고 사래요. 돈 아깝다고.” 얼마 전에 전기토스터를 샀다가 ‘자꾸 잡동사니 늘리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었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싱글인 사람이 고급 가구나 대형 가전을 사려는 계획을 말하면, 어른들은 대부분 그런 건 나중에 혼수로 사라고 한다. 기성세대에게 혼수는 여전히 ‘최대한 좋은, 무조건 새 물건’이다. 우리 엄마도 내 살림살이를 전부 잡동사니라고 부른다. 엄마는 지금도 굳게 믿고 계실 것이다. 아마 언젠가 결혼을 하면 내가 지금의 살림을 허물 벗어내듯 싹 버릴 것이라고. 물론 이 문제의 근본은 과시적인 결혼문화에 있는 게 맞다. 그러나 그 믿음은 결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결혼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두루 영향을 미친다. 당장 결혼을 준비하지 않는 독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비혼으로 살겠다고 결정하지 않은 이상, 일단은 다 미혼이 아닌가.
싱글 삶 갉아먹는 ‘결정 유예’
지금 아꼈다 나중에 사도 되는 것들, 좋다. 하지만 그 나중이 과연 언제인 걸까. 나중에 신혼집엔 냄비 하나도 쓰던 걸 가져갈 생각 말라는 엄마 말씀을 나는 이제 웃으며 흘려듣는다. 오히려 정말 싫은 것은, 몇년째 빨래건조기를 무척 사고 싶어 하면서도 지르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베란다가 없는 집이라서, 사철 미세먼지가 극성일 때마다 집 안에서 빨래 말리기는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건조기 구입을 계속 미뤄왔다. 핑계는 많았다. 집이 좁으니까, 비교적 고가품이니 잘 알아봐야 하니까…. 그러나 사실은 스스로 내 어깨를 돌려세워 왔을 뿐이다. 건조기 같은 건 나중에, 하고.
‘언젠가는’ 구입할 테지만 ‘아직은’ 구입하지 않는 것. 대신 작은 제습기를 샀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집 안에 빨래를 넌다. 이런 결정의 유예가, 결국은 혼자 사는 지금 내 삶의 질도 함께 잡아 앉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 삶에 귀 기울이지 않던 나는 지금 좋은 걸 마련해서 쓰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 초에 치워버렸던 책상을, 여름에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때 어릴 때 좋아했던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대학생이 된 주디가 처음으로 가져본 자기 방을 열심히 꾸미는 이야기였다. 커튼도 달고, 쿠션도 사고, 3달러를 주고 중고 마호가니 책상도 사온다. 마호가니 책상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모르면서, 주디는 어른이 되면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2층, 여덟평, 방 하나에 욕실 하나. 독립한 후 나는 이런 내 삶의 테두리를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럼 이 작은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물건들은 무엇일까. 아마 내 삶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목구비 같은 것일지 모른다. 나는 앞으로 천천히 책상을 마련할 생각이다. 내 마음에 꼭 알맞은, 나의 집에 꼭 어울리는. 언젠가는 나도 “…크고 네모난 마호가니 책상도 있어요. 이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소설을 쓰면서 이 여름을 지낼 거예요” 하는 손편지를 누군가에게 쓸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그 편지 옆에 새로운 찻주전자도 하나 놓여 있을 것이다.
유주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