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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혼자 사나 봐요?” 그의 물음에 얼어버렸다

등록 2019-09-29 09:04수정 2019-09-30 14:45

[토요판] 이런 홀로
늦은 밤 부른 출장 서비스

습기 많은 계절 지난 뒤 욕실 대청소
뿌듯하고 상쾌했지만…막혀버린 변기
내 힘으로 뚫겠다는 배짱 있었지만
결국 밤 11시 넘어 출장 기사 불러

외롭고 심심해도 편안했던 내 집
누군가에겐 ‘여자 혼자 사는 집’일 뿐
혼자 살아보니 대부분은 혼자서도 잘해낼 수 있었다. 전구도 갈고, 커튼 봉도 달고, 세면대 배수관도 교체했다. 조그만 헤어롤 하나쯤, 금방 빼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좁고 깊숙한 변기 구멍 너머엔 그런 자신감이 전혀 가닿지 않았고, 나는 결국 그날 밤 전문가를 부르게 됐는데…. 게티이미지뱅크
혼자 살아보니 대부분은 혼자서도 잘해낼 수 있었다. 전구도 갈고, 커튼 봉도 달고, 세면대 배수관도 교체했다. 조그만 헤어롤 하나쯤, 금방 빼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좁고 깊숙한 변기 구멍 너머엔 그런 자신감이 전혀 가닿지 않았고, 나는 결국 그날 밤 전문가를 부르게 됐는데…. 게티이미지뱅크
명절을 앞둔 늦은 퇴근길에 반소매 밑으로 슬그머니 한기가 드는 걸 느꼈다. 지난해에 비하면 싱거운 더위였지만, 그래도 새로 부는 가을바람은 역시 한결은 더 시원했다. 물기 없는 저녁 공기를 들이마시노라니, 환절의 설렘과 함께 갑자기 드는 다짐 하나, 욕실 청소였다. 내가 사는 원룸 욕실은 샤워 한번 하고 나면 온통 물바다가 된다. 세면대, 샤워기, 변기가 바투 붙어 있어서 샤워 커튼을 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여름이면 문 열면 습기요 닫으면 곰팡이라, 건조한 계절이 돌아온 기념으로 욕실을 싹 청소하리라 결심했다. 올여름도 툭하면 물때와 곰팡이가 끼는 통에 실컷 고생했기 때문이었다.

몸이 좀 피곤했지만, 막상 청소를 시작하고 보니 괜찮은 선택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타일과 세면대를 닦으면서는, 영화 <중경삼림>에서 가게 벽을 박박 청소하던 알바생 왕페이의 씩씩한 싱그러움에 빙의된 기분마저 느꼈다. 그다음 목표는 샤워였다. 뽀득뽀득 윤이 나게 닦은 욕실에서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잠들면, 그 이상 뿌듯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청소 마무리로 과탄산소다와 뜨거운 물을 부어놓았던 변기에 물을 내렸다. 그리고 세안 크림을 찾아 붙박이 수납장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헤어롤이 데구루루 굴러 나와 변기 안으로 톡 떨어졌다. 분홍색 헤어롤이 물과 함께 회오리치며 변기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슬로모션같이 선명한 순식간의 광경은 보고도 못 믿을 일이었다.

원시적인 도구로 사투를 벌였지만…

밤 10시가 넘었다. 혼자 사는 집에서 한밤중에 변기가 막혔다. 이럴 때 선택지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 직접 뚫는다. 둘째, 전문가를 부른다. 일단 조심스레 다시 레버를 내려봤더니 더디게나마 물이 내려가기는 했다. 그러나 이 상태론 곧 파국이 닥칠 것이었다. 마침 전화가 온 남자친구는 상황을 듣더니, 어설프게 건드렸다 일을 키우지 말고 사람을 부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건, 큰언니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변기에 물건 걸렸을 때 빼는 방법’이었다. 언니는 혼자 사는 집에 밤늦게 위험하니 사람은 일단 부르지 말라고 했다. 읽어보니 그냥 철사 옷걸이를 풀어서 뒤적거리라는 게 다였다. 그래도 변기의 물을 완전히 빼라는 신선한 조언을 믿고 실행해봤다. 한참을, 그리고 또 한참을 물을 뺀 변기 안쪽으로 옷걸이를 집어넣어 움직였다. 그리고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실패했다. 욕실은 깨끗해졌는데 변기는 막혔다. 피로와 좌절감에 나는 한동안 욕실 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았었다.

멀쩡한 옷걸이를 망가뜨려 변기에 밀어 넣은 건, 사람을 부르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이 작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는 다 내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배짱이 내겐 있었다. 혼자 산다고 하면, 뭘 설치하고 교체하는 건 혼자 하기 어렵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 혼자 살아보니 대부분은 혼자서도 잘해낼 수 있었다. 전구도 갈고, 커튼 봉도 달고, 지난겨울엔 세면대 배수관도 교체했다. 그래서 조그만 헤어롤 하나쯤, 금방 빼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좁고 깊숙한 변기 구멍 너머에는 그런 자신감이 전혀 가닿지 않았고, 나는 결국 그날 밤 전문가를 부르게 됐다.

업체를 찾는 건 쉬웠다. ‘마포 변기’ 검색, 끝. 24시간 접수를 한다는 업체에 전화했더니, 심야 요금은 7만원이고 50분 안에 가겠다고 했다. 시각은 이미 11시 반. 당연히 밤에는 신청만 받고, 사람은 아침에 올 줄 알았던 나는 당황했다. 사람을 부르면 안 된다던 사람도, 부르라던 사람도, 부른 사람도 모두가 당황했다.

50분 걸린다던 사장님은 20분이 지나기 전에 우리 집에 도착했다. 거대한 진공청소기 같은 기계를 끙끙 들고 올라온 사장님은 내 또래 젊은 남자였다. 욕실에 들어간 지 1분 만에, 그는 변기에서 빼낸 헤어롤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기계를 챙겨 나오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옷걸이를 구부려 만든 원시적인 도구로 사투를 벌였던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이제 7만원을 치르고 문을 닫으면 이 피곤한 상황은 끝이었다. 그런데 하필 은행 시스템 점검 시간에 걸려 계좌이체가 되지 않았다. 사장님은 입금 확인 뒤 철수가 원칙이라며, 점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남자 신발 현관에 두는 사람들

열려 있는 현관문 앞에 선 채 몇분이 흐르자, 그는 휘휘 현관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 여기 혼자 사시나 봐요?”라는 질문이 얼마나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지 그 사람은 미처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얼어붙었다. 신발장 위에 올려놓은 조그만 목각 인형, 향수, 두유 같은 것들도 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의 상징만 같아 불안하게 보였다. 현관 뒤에 중문 대신 쳐놓은 가림막을 그가 말없이 계속 쳐다보는 것도 무서웠다. 그건 막힌 변기를 못 뚫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감이었다. 괜히 남자 신발을 한켤레씩 현관에 내놓고 산다는 사람들을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다들 이런 순간을 겪어보았고, 다시는 이런 완전한 무력함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으리라고.

그때 사장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울에는 한밤중에 변기를 틀어막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은 모양이었다. 사장은 오전까진 꼭 입금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현관문을 닫고 휴대전화를 봤더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와 있었다. 언니와 남자친구였다. 심야에 알림을 끄는 기능을 설정해놔서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 언니는 하여간 남들 걱정시켜놓고 천하태평이라며 화를 냈다. 그러나 대꾸는 안 했어도 나는 그때, 태평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원래 예정대로 샤워를 하고, 예상대로 금방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잠드는 순간은 기대했던 만큼 달고 편안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홀로살이는 가끔은 외롭고 심심해도, 대부분은 편안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고려해온 홀로살이의 위험은 고독사였지 강력범죄 같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내 삶에서 안심과 행복이 얼마간 헐려 나간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진작에 헐리고 없어졌는데 혼자 뒷북인가 싶기도 했다. 혼자 사는 집이 방문 기사를 들이기에 무방비한 환경이란 걸 인식하게 되어 심란했다.

나는 이제 변기 뚜껑을 연 채로 수납장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도 어느 날 또 변기가 막히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두개인 줄 알았던 선택지는 이제 살짝 달라지긴 했다. 첫째, 직접 뚫는다. 둘째, 전문가를 부른다, 다만 아침에. 그날 나는 홀로살이를 해온 몇년 중 가장 큰 불안과 무력감을 경험했다. 이제 내가 사는 원룸이 때론 ‘내 집’이 아니라 ‘여자 혼자 사는 집’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내 의지나 대비와 상관없는 위험들은 어디까지 조심하면 되는 걸까. 과연 불운을 피하면서 불행하지도 않을 방법이 있는 것인지, 아직 고민 중이다. 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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