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대부분의 에스엔에스 ‘팔로잉’은 구독 개념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내가 관심 있는 사람, 내 취미 영역의 채널을 팔로잉하다 보면 내 피드는 내 관심사,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의 글로만 채워진다. 내 에스엔에스 팔로잉 역시 내가 편집하고 가꾼 나의 정원인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참을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싸워서 얼굴도 보기 싫은 어색한 친구를 한 교실에서 억지로 매일 만나야 한다는 거였다. 학교 시스템 안에서는 싫은 사람과도 한 공간에 머물러야 하고, 억지로 어울려야 하며 음악시간이나 체육시간에 짝이 되어도 참아야 했다.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바로 인간관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의 강제성은 이어지지만, 적어도 견딜 수 없는 상사나 동료가 있을 경우에는 ‘퇴사’라는 선택지가 있다.
어른이 되고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인간관계에서도 편집이 이루어진다. 편집과 편집을 통해 대화창에는 나와 잘 맞는 소수의 사람만 남게 된다. 친구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에 대한 역치(문턱)가 높아져서 만남 이후 감정의 앙금을 남기는 친구는 점차 차단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 삶에서 에너지를 쏟아야만 유지되는 관계를 굳이 가꾸어 나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또는 나와 다른 삶을 살게 된 친구들을 만나면 자꾸만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멀리하게 되는 관계도 있었다. 20대에는 함께해온 역사가 아까워서라도 오래된 친구들과의 우정을 유지해야 옳은 것인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30대를 통과하면서 그런 불편한 친구관계들은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을 상대방이 느끼지 않았을 리가 없고 상호 노력하지 않으니 관계의 끈은 끊어졌다.
함께할 때 즐겁지 않은 친구는 굳이 노력해서 만나지 않는 것, 그것은 매우 마음 편했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무는 일이었다. 불편한 시집 식구와 잘 지낼 필요가 없고, 세대 차이가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매사에 다툴 필요가 없는 1인 가구일수록 관계 개선을 위해 쏟는 에너지가 적으니 삶은 훨씬 단출해졌다.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고 정치적 성향과 해당 이슈에 대한 방향성까지 비슷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마음 다칠 일 없이 안전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무례한 소리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서 그런가?’ 물론 이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저런 유튜브는 누가 보나 했더니
“야! 야! 야!” 오랜만에 귓가에 들리는 불쾌한 언사였다. 고향에 내려가 장기 입원 중인 아빠의 병실을 찾았을 때 옆자리 할아버지가 자꾸만 반말로 누군가를 호명했다. “야! 저기 휴지 좀 갖다줘, 야! 야! 안 들려?” 누굴 부르는 건지, 설마 아내를 저렇게 무례하게 부르나? 저 노인네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쯔쯧…. 아무도 응대를 않자 할아버지의 목청은 더 커졌고 주변을 살피던 나는 그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그 노인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6인 병실에서 3개월째 옆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의 딸을, 그 할아버지는 그렇게 소리 높여 ‘야’라고 불렀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고 화를 냈지만 공감받지는 못했다. “어른인데 니가 참아야지. 그거 갖다 주는 게 뭐 어렵다고”가 엄마의 답변이었다. 아, 맞아, 우리 집은 이랬었지. 독립해 살다 보니 내가 잠깐 잊고 있었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가정교육을 운운하던 노인은 금방 관심사를 딴 데로 돌려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가짜 뉴스’를 진지하게 브리핑하는 원로 보수 평론가의 유튜브를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시청했다. 벌컥 화를 내다가 기분을 전환하는 속도 역시 빨랐다. 그는 정치 유튜브가 지겨웠는지 다른 영상을 클릭했고, 다음은 더 가관이었다. 이혼 후 수년이 흘러 새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는 중년 연예인이 80년대에 얼마나 많은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는지를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읊어주면서 상대를 성적으로도 비웃는 방송이었다. 내가 그 연예인이었다면 당장 고소라도 하고 싶은 자극적인 내용에 병실 사람들은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걸 누가 보나 했더니, 요기잉네?
헛소리 대잔치를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어서 한숨을 쉬며 병실 밖으로 나가서 ‘저런 건 도대체 구독자가 몇 명이나 되나’ 검색해봤다. 잔뜩 밑으로 깔린 목소리의 보수 정치평론가의 채널은 구독자가 무려 20만명이 넘었다. 저작권 따위 무시하고 연예인 사진을 마구잡이로 갖다 쓴, ‘카더라 통신’을 연예 뉴스로 둔갑시켜 ‘굴림체’ 자막을 띄워 만든 조잡한 채널은 10만명이 넘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다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는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막무가내 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사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대부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스엔에스) ‘팔로잉’은 구독 개념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내가 관심 있는 사람, 내 취미 영역의 채널을 팔로잉하다 보면 내 피드는 내 관심사,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의 글로만 채워진다. 피드가 지저분해지는 게 싫어서 중간중간 매력 없는 채널은 팔로잉을 취소하기도 한다. 내 에스엔에스 팔로잉은 내가 편집하고 가꾼 나의 정원인 셈이다. 그런데 계속 보던 것만 보던 나는 이게 세상의 전부인 양 착각을 하게 됐다. 내가 파고 있는 취미의 영역이 실은 매우 마이너한 분야라 공유자들이 ‘한줌’인데도 내 트위터에는 항상 관련 글만 올라오기 때문에 이게 메이저처럼 여겨졌다. 내 트위터 타임라인 안에서만 핫한 뉴스였는데 마치 그 뉴스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가 뜨악한 눈빛을 받기도 했다. 내 에스엔에스 피드에 뜨는 이미지, 글, 뉴스들은 나에게만 흥미진진한 세상인데 마치 모든 사람이 그 뉴스를 읽었고 그 이슈에 뜨거운 관심을 두고 있을 거라고 착각한 것이다. 근데 나에게만 재미있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내 관심사 위주로만 편집한 세상인데.
내가 만든 안전망이란 예기치 못한 난입으로 한순간에 깨질 수도 있으며, 내가 평생 들어가보지도 않을 유튜브와 에스엔에스 페이지를 누군가는 구독하고 있는 게 당연한데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조성한 좁은 세계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것이다. 불쾌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세상이란 원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무수한 타인이 부딪치며 사는 거라는 뻔한 명제를 재확인하게 됐다.
물론 시청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쥐고 흔드는 어르신들까지 수용할 순 없겠지만, 나와 다른 삶의 방식으로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 정도는 들으며 생각을 재정립해야 하는 게 아닌가. 때론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하고 나와 상관없는 주제, 관심사가 다른 주제로 오랜 시간 떠들어야 하더라도 그것은 몰랐던 세상에 대한 초대장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가 만든 세계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가며 몰랐던 세계를 이해하고 관용하는 노력이야말로 혼자 사는 내가 막무가내 노인이 되지 않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남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 자신이 가꾸어온 정원을 여전히 아끼면서 그 밖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도 존중하고 새로운 것을 마주쳤을 때 호기심을 가지고 배워나갈 수 있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 혼자 사는 나만의 가정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5년 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 끊어져버렸던 다른 이의 세계에 건네는 인사였다.
늘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