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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빨리 할멈 돌봐야 하니까” 팔순에 딴 요양보호사 자격증

등록 2019-05-20 05:00수정 2019-05-20 10:15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1부 돌봄orz : 김수명 할아버지의 사연

자격증 합격 뒤 1월부터 할머니 도맡아 돌봄
“지금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매일밤 기도”
매일 걷기 운동…서로 의지하며 부부삶도 변화
아픈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지난해 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80살 김수명(가명) 할아버지가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집에서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부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픈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지난해 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80살 김수명(가명) 할아버지가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집에서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부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들 둘에 딸 하나. 자식이 셋이지만, 80살 김수명(가명) 할아버지와 77살 최숙희(가명) 할머니 부부를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첫째 아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둘째 아들은 몸이 아팠다. 딸은 선뜻 자신이 모시겠다 나서지 못했다. 노부부가 의지할 사람은 서로뿐이었다.

2012년 숙희 할머니의 허리가 고장났다. 젊은 시절 보따리 장사와 파출부 일을 하며 허리를 혹사한 탓에 척추관협착증이 발병했다. 수술 뒤 일상으로 복귀하려던 때, 학원 차에 치였다. 다시 수술을 받았지만, 혼자서는 걸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됐다.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돌봄을 제공하는 ‘재가요양 서비스’를 이용했다. 오후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일주일에 3번. 아무래도 부족했다. “24시간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 3시간 해주면 끝이더라고. 청소밖에 안 해줘요. 그러면서 꼬박꼬박 돈은 한달에 8만~9만원씩 내야 하지. 할 수 있으면 내가 하는 게 좋겠다 싶더라고.”

지난해 중순 수명 할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자고 결심한 까닭이다. 공공 요양 서비스가 부족하니 수명 할아버지 같은 이들이 자력구제에 나서는 것이다. “아침·저녁·새벽엔 내가 붙어 있어야 하는데, 전문지식이 있으면 아내를 더 잘 돌볼 수 있잖아.”

기자가 수명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경기 부천의 한 요양보호사 자격증 학원이었다. 머리가 반쯤 벗겨져 언뜻 돌봄 받는 쪽이 어울려 보이는 할아버지는 ‘아내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최고령 수강생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특강이 있는 날은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할아버지는 한 달간 한 번도 수업에 빠진 적이 없다. 80시간 요양원 실습 때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특강 듣고 집에 오면 밤 11시야. 아내 챙기고 씻고 하면 밤 12시였지. 그래도 매일 자기 전에 1시간씩 복습했어. 빨리 자격증 따서 아내 돌봐야 하니까 무조건 한 번에 붙겠다 작심했지.”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수명 할아버지는 지난해 11월 단번에 시험에 합격했다. 80문제 가운데 60문제를 맞혔다. 우수한 성적이었다. 할아버지는 올 1월부터 아내의 요양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식사 준비와 목욕, 빨래와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도 모두 수명 할아버지의 몫이다. “요리는 원래 못했지. 그래도 해야 하는데 어떡해. 아내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 들어가서 찾아보기도 하고. 안 굶어 죽고 살려면 다 하게 돼 있어요.”

공부는 수명 할아버지를 바꿔놨다. 그 변화는 숙희 할머니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할머니는 우울증 탓에 툭하면 울었다. “다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살고 싶지가 않았어. (남편이) 그때 공부하기 전에는 무작정 성질부터 냈는데, 이제는 안 그래.” 숙희 할머니의 말에 수명 할아버지가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우울증이나 치매 환자한테는 윽박지르면 안 된다고 배웠으니까… 공부하면서 아내를 이해하게 됐어요.” 할머니는 이제 남편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늙으니 자식들은 나를 안 돌봐주고. 자식들도 늙으면 다 배신해요. 그런데 부부는 좋든 싫든 안 그래. 영감은 늘 내 옆에 있어 주니까. 나는 이제 영감 없인 못 살아요.”

경제적 상황도 한결 나아졌다. 첫째 아들로부터 매달 50만원을 받아왔던 부부는 지난해 말부터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아들 부부에게 “안 쓰면 되니 보내지 말라”고 했다. 생활비가 끊어지자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웠다. 하지만 수명 할아버지가 하루 3시간씩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한달 수입은 80만원으로 늘었다. “돈이 조금씩 나오니까 자부심도 생기고 걱정이 없는 거야.”

수명 할아버지는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한다. 자신마저 쓰러지면 아내가 요양원에 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도 통풍과 고혈압으로 약을 먹고 있다. 2월 말엔 지하철에서 쓰러져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고 심장 검사도 받았다.

“내가 건강해야 아내를 봐주지. 매일 기도해요. 지금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제발 더 나빠지지만 않게 해달라고.”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관련 영상] 뉴스룸 토크: 권지담 기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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