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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살림을 들여다봐줄 남의 눈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19-03-24 09:51수정 2019-03-24 10:34

[토요판] 이런 홀로
환기도 하고 청소도 하며
흐트러진 ‘집매무새’ 바로잡아
원룸에서 손님맞이란 일대의 사건

내 삶 지켜본 이들, 집에 오는 건
지금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펼쳐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

손님이 오기로 하면, 나는 여섯평 원룸을 돌아다니며 살림을 살핀다. 새 베갯잇과 이불을 꺼낸다. 빌려줄 잠옷과 수건이 보송보송한지 체크한다. 세면대의 물비누가 얼마나 남았나 흔들어본다.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도 통통한 새것으로 바꿔 끼우고, 끄트머리는 세모꼴로 접어놓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손님이 오기로 하면, 나는 여섯평 원룸을 돌아다니며 살림을 살핀다. 새 베갯잇과 이불을 꺼낸다. 빌려줄 잠옷과 수건이 보송보송한지 체크한다. 세면대의 물비누가 얼마나 남았나 흔들어본다.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도 통통한 새것으로 바꿔 끼우고, 끄트머리는 세모꼴로 접어놓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오늘은 창을 활짝 열고 넉넉한 환기를 했다. 지독한 불청객인 스모그가 잠시 엉덩이를 떼고 물러난 기념이다. 지난 일주일 창을 여닫은 기억은, 환기라기보다는 산소 공급에 가깝게 옹색했다. 답답함만 조금 가시면 부리나케 휙휙 창문을 닫아걸기 바빴다. 그러나 오늘은 방과 욕실의 창문을 다 열어놓았다. 집안 구석구석의 공기까지 바꿔 들이는 기분으로, 그렇게 시원스레 창을 열어놓고 청소도 했다. 저녁 공기는 아직은 좀 차가워도 이미 다 서근서근하게 풀어져 봄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비누 냄새가 솔솔 풍기는 빨래 건조대에선 막 빨아 넌 수건들이 부숭부숭 마르고 있다. 이 수건은 내일모레 서울로 출장 오는 고향 친구가 쓸 것이다. 봄 공기를 들여놓은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갈 친구를 생각한다. 친구에게 묻어 올 남쪽의 봄도 생각한다.

원룸에서 손님맞이란 늘 일대의 사건이다. 손님이 오기로 하면 나는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깐깐한 집사장 흉내를 내며, 손님방도 당연히 따로 없는 여섯평 원룸을 돌아다니며 살림을 살핀다. 새 베갯잇과 이불을 꺼낸다. 빌려줄 잠옷과 수건이 보송보송한지 체크한다. 세면대의 물비누가 얼마나 남았나 흔들어본다.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도 통통한 새것으로 바꿔 끼우고, 끄트머리는 세모꼴로 접어놓는다. 부엌에 가서는 자리끼로 낼 생수는 떨어지지 않았는지, 아침에 커피를 대접할 원두는 한줌 남았는지도 확인한다. 근황 이야기에 곁들일 맥주 한병은 냉장고 제일 시원한 자리에 대기를 시켜둔다. 이렇게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에 없던 부지런을 며칠씩 떨어가며 기다린다, 손님을.

남의 눈 없는 이 방이 좋으면서도

이토록 설레가며 손님을 환영하고 싶은 이유는 뭘까. 손님이래야 사실 단조롭다. 우리 집은 몇해째 새 손님은 없이 다 단골뿐이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 아니면 언니 동생으로 부르며 지내는 옛 동료들. 대개 출장이나 나들잇길에 하루 저녁 들르는 것이고, 며칠씩 머무는 건 외국에 사는 언니가 한국에 들어올 때뿐이다. 공통점은 모두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런데도 이 손님들을 맞으며 여전히 신이 나면서도 긴장이 된다. 그 이유는 그들 역시 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손님들은 내 생활의 높낮이를 모두 목격했던 사람들이다. 아플 때와 건강할 때, 바쁠 때와 한가할 때, 마음이 행복할 때와 불행할 때,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라지던 내 모습과 그때그때의 내 집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머물렀다 가는 것은 지금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펼쳐 보여주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쪽지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하는 마음으로, 흐트러진 ‘집매무새’를 바로잡는다. 살림도 사람의 것이라, 적당한 간격으로 다른 사람 눈에 띌 필요가 있다.

이것도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칸막이 안팎을 넘나드는 시선 속에서 일하고 돌아올 적에는, 남의 눈 없는 이 방 안에서 활개 치며 쉬는 기분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 눈치는 이어폰과 함께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내 집에 신발 벗고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편하고 편안하고 평안하다. 또 웃으며 찡그리며 맞장구쳐주어야 할 그저 그런 말들로부터의 해방은 어떤가. 희미한 냉장고 소리가 곁든 정적이 좋아서 나는 매달 월세를 벌며 산다. ‘그렇지, 이러려고 독립했지’ 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이 다디단 해방과 정적도 남의 눈이 아주 없어서는 또 금세 변질되어버리기 일쑤다. 이따 할까, 내일 할까,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다음에 할까. 순간순간의 타협들은 돌아서면 우거지는 잡초처럼 좁은 방 안을 금세 잠식한다. 어제 입은 옷과 그끄제 입은 옷이 의자 등받이에 첩첩이 쌓여 있고, 라면은 다 끓었는데 당장 수저통에 젓가락이 없는 그런 야생의 집.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일에 쫓기거나 몸이 아프면 늘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늘어진 사이클이 저절로 회복되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럴 때 손님 방문은 살림력의 탄성을 복원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내 살림을 들여다봐줄 남의 눈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손님방이 있는 집을

그렇다면 내 집을 남에게 보여주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열심히 공부한 흔적을 올리는 ‘공부스타그램’처럼, 작아도 화사한 집을 지속하기 위해서 ‘청소스타그램’이라도 해야 할까. 그러나 손님이 온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부분만 카메라로 비출 수 있는 소셜미디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손님은 내가 봐주길 원하는 것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화각으로 가둬지지 않는 타인의 시야에 내 생활이 드러날 때, 나의 적막하고 아늑한 독거는 환상의 정글이나 동굴이 아닌 오늘 마포구 어느 골목,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한구석으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하여,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린다. 서울의 모처를 돌아다니다 친구의 집에 이불과 잠자리를 빌리러 오는 정다운 친구들을. 평소에 놓치거나 놓아둔 빈틈들을 건지고 채워 넣는다. 그리고 맞이한다. 그래도 미처 해치우지 못하고 소복한 고봉을 만들어가는 빨래 통을 보아도, “아이고” 하고 웃어줄 따뜻한 눈들을. “요새 바빠서…” 하고 핑계를 대도록, 나를 적당히 부끄럽게 만들어주는 그 시선들을.

‘작은 집엔 작은 살림.’ 원룸으로 독립해 나온 뒤로 나는 이 말을 화두처럼 뇌며 살았다. 그러나 작년에는 얇은 접이식 매트리스를 하나 장만했다. 있는 살림도 어지간하면 줄여나가던 중이었으니 이례적인 쇼핑이었다. 평소에는 침대 머리맡에 접어두고 헤드쿠션으로 쓰고, 손님이 오면 바닥에 펼쳐놓으면서 잘 쓰고 있다. 그러나 순전히 손님을 침대에 재우기 위해 산 것이다. 누가 침대에서 자고 누가 바닥에서 잘지, 서로 침대에서 자라며 염치 대결을 하는 것에 지쳐서 아예 ‘바닥 취침’ 옵션을 없애버렸다. 또 남들보다 꼬리뼈가 길어 맨바닥에 앉기 힘들어하는 친구를 편히 앉히려고, 새해에는 방석도 샀다.

‘청소는 이렇게’ ‘빨래는 이렇게’ 하며 나는 자꾸 내 생활을 딱딱하게 바꿔왔다. 혼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매끈하게 깔끔하게 잘 살아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차츰 이렇게 푹신한 것을 사게 된다. 이 딱딱한 집에 나를 들여다보러 와주는 손님들을 위해. 손님방 없는 집에 오는 손님을 위해.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잠옷과 수건, 매트리스 덮개를 세탁한다. 이불도 널었다 개고, 접이식 매트리스는 먼지와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다시 착착 접어놓는다. 손님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정다운 고요 속에서, 언젠가는 손님방 하나를 더 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선영아, 어서 와.

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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