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개학 연기 투쟁에 나선 4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유치원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학 연기 투쟁에 참여한 이 유치원은 개학 연기 투쟁에 참여했지만 자체 돌봄을 제공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995년 창립 이후 툭하면 아이들을 볼모로 한 ‘집단 휴원’ 등에 나섰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개학 연기 투쟁’에 나섰다가 ‘법인 취소’ 역풍을 맞았다. 뒤늦게 한유총은 ‘개학 연기’ 취소를 밝혔으나 교육 당국은 법인 취소를 고수할 방침이다. 교육부도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유치원 3법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반대하며 한유총 소속 일부 사립유치원이 4일 실제 개학을 연기하자 서울시교육청이 한유총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법인 취소’라는 역풍을 맞은 한유총은 이날 오후 늦게 개학 연기 투쟁을 조건 없이 철회한다고 밝혔다. 한유총 집행부는 이날 보도문을 내어 “개학 연기 사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5일부로 각 유치원은 자체 판단에 의해 개학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개학 연기 투쟁을 주도한 이덕선 이사장은 수일 안에 거취를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겠다고도 했다.
애초 한유총 집행부는 3일 기자회견을 열어 1500여곳에 이르는 유치원이 개학을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유치원의 개학 날인 4일 정부가 점검한 결과 실제 개학을 연기한 곳은 239곳뿐이었다. 전국 사립유치원 총 3875곳 가운데 동참한 유치원이 6.2%에 그친 것이다.
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에 정부는 개학 연기 유치원 명단 공개, 시정명령 및 형사고발 등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했다. 3일부터 각 시·도 교육청 누리집에 개학 연기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고 업데이트했다. 한유총이 요구한 ‘공론화위원회’ 등에는 에듀파인 도입 등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공개로 맞대응했다. 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이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 등에 찬성했다.
4일엔 교육청 담당자들이 직접 개학 연기 유치원을 방문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5일까지 문을 열지 않으면 형사고발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강경 대응과 함께 “아이를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집단이 과연 교육자냐”라는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며 한유총의 개학 연기 철회로까지 이어졌다.
1200여곳에 이르는 한유총 회원 유치원이 집행부의 ‘개학 연기 투쟁’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서 한유총 지도부는 궁지에 몰렸다. 3일과 4일 사이 개학 연기를 철회한 유치원이 126곳이나 늘었고, 개학을 연기한 239곳 가운데 221곳은 자체 돌봄교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 우려했던 보육대란은 피해 갈 수 있었다.
보육대란은 피했지만 개학 연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전가됐다. 대다수 유치원 학부모는 3·1절 연휴 시작과 함께 ‘개학 연기’ 통보를 받은 상황이라 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연휴 내내 학부모들은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개학 연기’ 방침을 밝힌 유치원 명단에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당장 4일부터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머리를 싸매야 했다.
아이들을 볼모로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는 한유총을 지탄하는 학부모들의 여론은 더욱 뜨겁게 끓어올랐다. 일부 학부모는 유치원에 항의 전화를 하고 환불까지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아이를 유치원에 맡겨야 하는 처지 때문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거나 나서지 못한 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정부의 굳건한 엄단 방침은 물론 악화된 여론 속에서 한유총의 개학 연기는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는 국공립 증설 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사적 재산권을 주장하는 한유총과 같은 집단들이 다시는 아이들을 볼모로 삼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선아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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