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선언서.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뛰어난 선언이라 할 만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편집자 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1919년 2월27일 경성/오승훈 기자]
선언서는 우리 민족의 강렬한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천명한 것에서 나아가 현 시기 독립운동의 이론과 논리를 정리한 대표적 문건으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3월1일 ‘거사’의 지도이념을 표출하고 독립의 절실한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호소함으로써 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는 도화선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3·1독립선언서’ 자체가 바로 거사를 상징한다고 보는 이유다.
선언서는 누가 읽어도 커다란 박력을 가지고 감명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두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대목에서부터 끝의 공약삼장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가히 지금까지 이어져 온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뛰어난 문장이라 할 만하다.
선언서는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는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라고 시작한다. 우리는 여기서 ‘인류 평등’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세계를 문명국과 야만국으로 나누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정복하는 것이 문명의 시혜라고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인류가 평등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선언문 맨 앞에 내세웠다. 지금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약육강식·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을 피억압 민족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평화와 평등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말한 것이다.
선언서에는 거사의 한 계기가 된 ‘민족자결’이란 용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3·1독립선언서가 적어도 민족 독립의 근거를 민족자결주의와 같은 외래적 정치이념에서 찾지 않았음을 뜻한다.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것은 누구의 승인이나 인정과는 관계없이 자명하다는 자존감이 내포돼 있다. 민족자결주의란 자신을 식민지국가의 예속민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논리이리라.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갈고닦아 길러진 인도주의적 정신이 이제 막 밝아 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온전히 지켜 왕성한 번영에 삶을 즐겨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새봄이 가득 차 평화가 넘치는 온 세계에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를 맺게 할 것이다.”
선언서에는 이처럼 평화와 자유, 인도주의의 가치가 녹아들어 있다. 강한 민족자존 의식이 드러나지만 그것이 결코 배타적이지 않고 포용과 공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높은 정신사적 의미를 지닌다. 선언서의 전반적인 이념은 갈등보다는 조화, 분리보다는 통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이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동양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또 중국이 일본에 땅을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의 중요한 부분인 동양 평화를 이룰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이 어찌 사소한 감정의 문제인가!”
이처럼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며 중국을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서 동양평화,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찾고 있었다.
“하나. 오늘 우리의 독립 선언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나,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드날릴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마음껏 드러내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선언서의 말미에 있는 공약삼장은 최남선이 아니라 한용운이 추가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본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비폭력을 전제로 하면서도 결연한 투쟁을 호소함으로써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전개되는데 행동강령이나 지침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의 역사>18(독립기념관·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