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 불교 2인 등 총 33인으로 이뤄진 민족대표들. 선언서를 작성한 최남선은 “학자로 남겠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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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27일 경성/오승훈 기자】
3월1일에 거행될 독립선언식이 이틀 앞으로 성큼 다가온 가운데, 독립선언에 나설 민족대표 명단이 27일 밤 최종 결정되었다. 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 불교 2인 등 총 33인으로 영도자에는 손병희(58) 천도교 교주가 위촉되었다. 민족대표가 확정됨에 따라 천도교 측은 곧바로 선언서 인쇄에 착수하였다. 조선 독립의 의지를 만방에 알릴 거사일이 마침내 밝아오고 있다.
이날 밤 경성 재동의 최린(41) 보성고등보통학교장의 자택에 이승훈(55)·이필주(50)·함태영(47)·최린·한용운(40)·최남선(29) 등 천도교·기독교·불교 각 종교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비밀회동을 열어, 독립선언 동참 의사를 피력한 33인의 명단을 취합하였다. 천도교는 중앙교단 차원에서 도사, 장로를 중심으로 최고위직 간부 15명이 참여하였고 기독교계에서는 장로교 6명, 감리교 10명, 도합 16명이 연대 의사를 밝혔다. 불교계에서는 2명이 이름을 올렸다. 유림과도 접촉했으나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데다 시일이 촉박해 비밀 유지 차원에서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언서 명단 첫머리에는 거사를 성사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손병희 천도교 교주가 영도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다음으로는 기독교를 대표해 길선주(50·장로교)·이필주(50·감리교) 목사가, 네번째로는 불교 대표로 백용성(55) 스님이 배정되었다. 이후부터는 종교의 구분 없이 배열하였는데 종교 간 연대를 이뤄낸 최 교장과 이승훈 장로는 각각 30번째와 17번째 이름을 올렸다.
조직적·개인적 차원에서 이름을 빼거나 빠진 경우도 있었다. 함태영(47) 장로는 기독계의 후사를 도모해야 한다는 이유로 명단에서 빠졌고 참여 의사를 밝힌 유학자 김창숙(40)씨는 모친의 병환으로 뒤늦게 연락을 받는 바람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씨는 “학자로 남겠다”는 이유로, 송진우(32) 중앙학교장과 교사 현상윤(23)씨는 “교육 활동에 매진하겠다”며 연대서명을 사양했다. 이날 밤 천도교가 소유한 인쇄소 보성사에서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선언서 2만1천부가량이 인쇄되었다.
△참고문헌
김정인, <오늘과 마주한 3·1운동>(책과함께·2019)
조한성, <만세열전>(생각정원·2019)
정운현, <3·1혁명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역사인·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