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트라우마 리포트] ④ 모두가 불행한 살처분, 대안은
살처분 방점 찍다보니 처우 개선 뒷전…2인 1조 못 지키고 잦은 사고
‘예방’이란 이름으로 기계적 살처분…고통의 악순환 이젠 끊어야
살처분 방점 찍다보니 처우 개선 뒷전…2인 1조 못 지키고 잦은 사고
‘예방’이란 이름으로 기계적 살처분…고통의 악순환 이젠 끊어야
방역사가 줄로 소를 잡은 다음에 채혈을 하기위해 보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는 국가재난형 가축 전염병이다. 정부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에 걸린 가축과 함께 주변의 멀쩡한 가축도 살처분한다. 2000년대 들어 살처분된 가축은 모두 9806만마리. 매년 544만마리 넘게 죽임을 당했다. 죽어야 하는 가축 건너편엔 죽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살처분 노동자’들이다. 초기에 공무원을 동원했던 정부는 이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외주화한다. ‘대량 학살’의 경험은 살처분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국가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왔다. <한겨레>는 살처분에 5차례 이상 참여했던 노동자 38명(공무원 17명, 일용직 16명, 방역업체 소속 5명)을 만나 1명당 최소 2시간 이상 인터뷰했다. 살처분 노동자의 트라우마를 깊이 들여다보고 살처분 산업의 외주화, 구멍 난 국가방역 시스템, 그리고 대안을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국가방역 상시·필수인력이라지만…현실은 ‘푸대접’ 그들은 살처분 앞에 버티고 선 최후의 방어선이다. 방역사는 가축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 이를 예방하는 작업을 한다. 국가 방역의 상시·필수 인력이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에이아이·AI) 등 주요 가축 전염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시료 채취와 농장 예찰이 주된 업무다. 소는 도축장에 가기 전에 반드시 브루셀라와 결핵 검사를 해야 판매가 가능한데, 이 검사 역시 방역사들이 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을 막는 백신 같은 역할이다. 전국 가축 농가의 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작업도 한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가축과 차량의 이동을 통제하는 초동 대응도 이들의 몫이다. 이때 방역사들은 농가 근처에 텐트를 치거나 차량에서 잠을 자며 길게는 1~2주일 정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살처분 현장을 지킨다.
방역사가 혼자서 자세가 보정되어 있는 소의 꼬리를 잡아 한 손으로 주사기를 들고 채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전직 방역사 허정씨는 2016년 9월8일 소 브루셀라 검사를 위해 홀로 채혈을 하다 수컷 젖소에 게 들이받혀 갈비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측두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사진은 사고 뒤 수술한 자국. 허정 제공
공무직인데 신분은 불안정…“무기계약직이라 무기력” 방역사들은 신분마저 불안정하다. 방역본부의 정원은 모두 1034명이다. 이 가운데 정규직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49명뿐이다. 현장을 뛰는 방역직, 위생직, 검역직 등 나머지 985명은 무기계약직이다. “태생이 무기계약직이다 보니 무기력에 많이 빠지죠. 특히 방역직은 에이아이·구제역 방역의 최일선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업무를 담당하는데도 말이죠. 처우 수준도 다른 무기계약직보다 낮아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김필성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장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직률이 높다. 방역사의 이직률은 6.9%. 공공기관 평균 이직률(1.4%)의 5배에 이른다. 같은 방역본부에서 일하는 위생직의 이직률(2.7%)보다 약 3배 높다. 30대 중반의 한 방역사는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 “공부를 하든지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전문성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김용균씨가 사고로 목숨을 잃자 갑자기 2인1조 근무 원칙을 꼭 지키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인원은 그대로인데 현장에선 혼란만 가중됐습니다.” 김 지부장이 말했다.
방역사가 돼지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축사 안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예방적 살처분 미명 아래 기계적 살처분…규모 줄여야” 현장의 아픔과 달리 정부는 ‘간편한’ 패러다임을 펼친다. 무분별한 살처분에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인력이 투입되는데다, 심지어 그 인력은 점점 외주화하고 있다. 이런 인력이 대량 학살을 단시간 안에 처리하려다 보니 트라우마에 쉽게 노출된다. 그것은 동시에 동물권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일이기도 하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시장·군수·구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예방적 살처분’을 선택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은 발생 농장 반경 3㎞ 이내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해왔다. 지난해 9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에이아이·구제역 방역 보완 방안’을 발표하면서 아예 ‘3㎞ 예방적 살처분 원칙 확립’을 천명했다. 살처분 규모를 줄이자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와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신속한 방역이라는 측면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10㎞로 하면 더 확실하겠죠. 또는 5㎞로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간편한 정책 반대편에서 죽지 말아야 할 동물들이 죽고 있는 겁니다. 일반적인 살처분은 필요하겠지만, 예방적 살처분의 기준과 과정을 세분화해서 3㎞ 이내라도 건강한 개체는 제외할 수 있는 세부 규정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고민 없이 대량 살처분을 택합니다.” 함 교수의 말이다. 김현권 의원 역시 “살처분 전체 숫자에서 예방적 살처분 비율이 굉장히 높다”며 “획일적으로 컴퍼스 돌리듯이 해서 멀쩡한 가축을 수없이 묻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살처분 트라우마 방지법’(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던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도 “예방적 살처분은 비윤리적”이라며 “말 못하는 동물의 고통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후유증도 상당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어쩔 수 없다는 자기 위안과 합리화로 더 나은 방법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살처분은 최소화하고, 차단 방역을 강화하되 의심군은 역학관계, 발생 시기, 지역적 특성 등을 고루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4월15일 김제시 용지면 용수리 한 양계장에서 살처분을 기다리는 닭들이 닭장 밖으로 고개를 내 밀고 있다. 연합뉴스
“동물권이 침해될수록 인권도 침해된다” 살처분 규모 축소가 보다 장기적인 과제라면 당장의 과제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신속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도적 살처분을 시행하는 것이 동물복지에 부합할 뿐 아니라 살처분 참여자의 트라우마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을 보면, 가축 살처분을 할 때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정한 ‘방역 목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서의 일반 원칙’도 동물을 질병 통제 목적으로 죽일 때는 즉살 또는 즉시 의식을 잃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시 의식을 잃게 하지 못할 경우에도 가능한 한 해가 적도록 하여 동물의 불안, 통증, 스트레스, 고통을 유발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가스 대신 질소가스 거품을 사용해 동물을 기절시킨 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안락사시키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비용이 더 들고 살처분 시간이 길어진다며 주저하고 있다. 주저하는 농식품부 뒤에서 ‘빨리빨리’가 미덕인 살처분 현장은 ‘고통의 최소화’라는 목표를 쉽게 무시한다. <한겨레>와 인터뷰를 한 일용직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은 살아 있는 오리를 기계에 넣어 갈거나 이산화탄소 가스 주입 뒤에도 죽지 않은 닭과 오리의 목을 비틀거나 발로 밟아 직접 ‘처리’했다. 이로 인해 악몽에 시달리거나 살처분에 익숙해질수록 동물에게 폭력적으로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한쪽에선 동물을 잔인한 방식으로 죽이는 노동자들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3년 ‘공장식 축산업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 참여했던 하승수 변호사의 생각은 다르다. “살처분이 졸속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해진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굉장히 나쁜 (노동) 환경을 만들어놓고 그 환경과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엄격하게 지키기를 바랄 수는 없지요. 바로 이런 이유로 정부는 살처분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부담으로 남겨둬선 안 되고 직접 치료를 책임져야 합니다.” 현재 인권위는 살처분 참여자들의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회복을 위해 이들에게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안내하라고 농식품부 장관에 권고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도 살처분을 한 날부터 15일 안에 참여자들의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회복을 위한 치료 지원의 내용과 신청 방법 등을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했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더라도 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함태성 교수는 더 나아가 “사후 심리치료에 공무원은 물론 살처분에 참여했던 일반인, 외국인 노동자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불법체류자도 인권 보호 차원에서 마땅히 치료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_________
밀집 사육이 전염병 키워…“공장식 축산 재고해야” 근본적으로는 밀집 사육을 하는 ‘공장식 축산’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규모 살처분이 반복되는 데에는 한국 축산이 가진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박종무 평화와생명동물병원 원장은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열린 ‘생명을, 묻다’ 토론회에서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아 축산에 활용할 만한 초지가 없는 우리나라는 가축에게 먹일 사료도 생산되지 않는다”며 “다양한 보조금을 받으며 생산비 이하의 싼값의 곡물을 공급받아 생산하는 국외 축산 농가와 수입 사료를 먹여 사육하는 국내의 축산 농가는 처음부터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이런 이유로 좁은 공간에 배터리 케이지(밀집형 닭장)를 아파트 2~3층 높이까지 쌓아두는 공장식 축산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장식 축산을 지향하는 대규모 양계장에서는 육계용 병아리가 에이아이에 감염됐을 때 치사율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병을 앓는 동안 체중이 늘어나지 않아 출하가 지체되는 것을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농가에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농장을 초기화시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량 살처분의 이유가 된다는 게 박 원장의 주장이다.
경기도 양주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이 알을 생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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