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원이 소 시료 채취를 하고 있다. 방역본부노조 제공
“넘어진 채로 송아지에게 옆구리를 밟혀 갈비뼈가 으스러졌어요. 통증을 참으면서 파스를 뿌리고 몇 시간 더 근무했습니다.” (김기철 방역사), “종일 소·돼지 똥 밭에 굴러도 씻을 샤워실이 없습니다.”(전광수 방역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방역본부)지부는 2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방역사와 검사원, 예찰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증언 대회를 열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노동자들은 대부분 무기계약직이다. 방역사는 축산 농가에서 방역 업무를 지원하고, 검사원은 도축 축산물을 검사한다. 예찰원은 축산농가에 전화로 가축사육정보와 가축전염병 상황을 점검·수집 한다. 이날로 이들의 파업은 5일째를 맞았다. 이들은 “농식품부가 인력충원, 노동환경 개선 등 노조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전면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7년째 방역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김기철 방역사는 “2020년 5월6일, 송아지 시료 채취를 하다 송아지가 날뛰면서 축사 바닥에 넘어졌고 옆구리를 밟혔다. 머리가 밟혔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방역사는 파스만 뿌린 채 몇 농가를 더 돌며 시료 채취를 해야 했다. 2인 1조 근무가 이뤄졌지만, 나머지 한 명은 업무 중 손가락을 다쳐 깁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 방역사는 “두번째 갈비뼈 골절 판정을 받았지만 경영평가에 악영향을 줄까 봐 산재처리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실제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10건 중 1건은 2인1조 근무를 시행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가축위생방역 노동자들은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주장한다. 방역본부지부가 파업에 돌입한 20일부터 지난 23일까지 4일간 조합원 438명(방역사 213명·위생직 139명·예찰직 84명·기타 2명)을 상대로 현장 실태조사(중복응답)를 한 결과, 방역사 절반 이상이 사고 위험에 노출된 적 있다고 답했다. 돼지에게 물리거나 뒷발에 차인 건수가 122건으로 가장 많았고, 소나 돼지를 묶다가 줄에 쓸려 화상을 입은 경우가 67건, 주사기에 찔린 경우가 54건에 달했다. 미끄러지거나(6건) 피부질환을 얻은(3건) 경우도 있었다. 칼을 사용해 지육(고기) 검사를 해야 하는 검사원의 경우, 칼에 베이는 사고(47건)가 가장 많았다. 내장을 직접 만지다 보니 도축장에서 미끄러지는 경우(31건)도 다수였다. 조사에 참여한 한 조합원은 “칼을 쥔 채 미끄러운 내장을 들어 올리다 놓쳐 칼이 얼굴을 찍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사무환경도 열악하다. 11년차 전광수 방역사는 “중앙본부 9곳과 도본부 45개 사무소 중 자체 사옥이 하나도 없다. 사무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월세에 맞춰 이사할 곳을 방역사가 찾아다녀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 방역사는 “예산이 모자라 (사무실을 구해도) 회의할 공간은커녕 직원들 책상 놓을 공간도 부족하다. 샤워 시설도 없다”고 했다.
김필성 노조 지부장은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이후 방역 및 예찰 업무가 폭증했으나 인력 충원은 0명”이라고 말했다. 방역본부 전체 정원 1274명 중 일반 정규직은 55명이고, 1219명이 무기계약직이다. 노조는 무기계약직 가운데 92명의 현장인력(방역직·위생직·예찰직)이 공무직 행정인력으로 차출되면서 현장 인원은 더욱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농식품부에 △2인1조 인력 충원(대가축의 경우 3인 1조) △무기계약직 차별 철폐 △노동환경 개선 △인수공통감염병 정기검진 체계와 치료 예산 마련 △국가 방역시스템 전면 개편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조합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가축위생방역노동자 현장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서 현장인력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와 지자체 사이에서 업무 과중 시달리는 노동자들
가축위생방역노동자들이 업무 과중에 시달리는 배경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나눠서 부담하는 이들의 인건비 예산 구조가 놓여있기도 하다. 이들의 인건비는 국비 60%, 지방비 40%로 이뤄져 있다. 업무 지시가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내려온다. 두 업무가 중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한 방역사는 현장 실태조사에서 “같은 점검 업무를 방역본부, 지자체에서 각각 실시하는 탓에 비효율적인 이중점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점검 기관을 여러 기관이 하다보니 축산 농가의 반발도 빈번하다고 한다.
악성가축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타지역 인력을 신속히 투입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예산 구조 탓에 불가능하다. 노조의 설명을 들어보면,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결원이 발생한 충남 예산에 지난해 11월22일부터 12월8일까지 대전 검사원을 파견했다. 그러자 대전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은 당시 파견 기간을 근무하지 않은 기간으로 간주하고 그동안 지급된 보조금에 대해 반납할 것을 통지했다고 한다. 지자체도 부담하는 예산 구조 탓에 도별로 배치된 인원을 타지역으로 지원할 수 없는 경직된 환경인 것이다. 김필성 노조 지부장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악성가축전염병이 발생한 곳은 과중한 업무로 신음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자율적으로 예산 운영을 못 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국가 재난 질병은 국가에서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축위생방역노동자들은 악성가축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지자체를 떠나 인력·장비를 집중할 수 있도록 국비 100% 가축방역기동대를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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